강남좌파라는 부류가 생겼다고 한다. 자신의 기득권이나 혜택은 내놓지 않으면서 진보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부류라고 한다. 헐거운 무장으로 생활은 신자유주의적으로 생각은 좌파로, 그리하여 술자리에서 사회를 비판하며 한껏 취하는 나를 빗대어 얘기한 술자리 좌파와 수미상관이다. 그리하여 내가 권하는 사회는 나의 모든 진정성에서 나온 희망이 아닐 수 있고 어줍잖은 계몽의식의 초고에 불과한 의적행위로 반성하는 순간, 실은 이 순간은 최근 나의 모든 결정과 판단에 관계하고 있고 나를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반성이 끊임 없이 행위되어야 하는 당위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진보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자격 논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중대한 범위는 실은 생각의 권리와 범위이지 오로지 사적재산의 범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멈춰있지 않고 바쁘고 자유로울 때, 물질은 가야 할 곳, 공평한 쪽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나의 생각이 일단 그러하지 않고는 유물론적 가치관은 공평하지 않고 극히 사심에 의한 복무에 열중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도 현실과 괴리를 가지고 생각하는 방식은 이상주의의 조달이거나, 근본주의의 회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먹물의 기득권이라 규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기득권이라 규정하고 나면 할 일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사상과 글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새로 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이 터지는 것은 믿음을 가진 몇몇 선각자의 일이 아니라 같은 생각을 가진 민중들의 소통과 교통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일개의 민중으로 부터 내가 해야 할 일과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보잘 것 없고 어줍잖은 노동을 보태려 할 뿐이다. 내가 제도권에서 어떤 위치의 인간이냐는 입바른 명예욕과 경계지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주의가 오직 진보의 전유물은 아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가장 역사적인 철학은 이기심이다. 이로서 '여유있을 때, 세계을 둘러보겠다' 는 경제적 접근 방식이 현대를 지배하는 술어가 되었다. 세상을 둘러보는 물리적 여행과 세계를 둘러보는 사색과 의식의 범위를 쉽게 동질시 하는 안락한 금가르기는 만행에 가깝다. 인간이 오로지 이기적임을 규정하고 부터 시작하는 경제학의 토폴로지가 그 자체로도 불가능하며 우리는 편리함에서 수고스러움으로 가벼운 전환을 해야 함을 일깨운다. 하지만 그것이 현대의 가장 원형적인 이상주의인 것은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그 만족이란 것에 접근할 수 없고, 단 한번의 붓그리기로 세상의 문법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 본능적인 이기심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나의 담론은 선동적일 수 없다. 불평등한 기억에서 평등한 선동으로 맘 편하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령처럼 떠도는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를 붙들고 거대 담론을 타파하기 위한 선동으로 술자리를 이끌어야 하는 충분한 성량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감수성과 이성에 걸쳐 자본이 해결해준 것이 무엇인지, 자본의 순환고리에 매수되어 짐짓 외면 했던 이웃들의 제스쳐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활동이 되고 현상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나마 좌파라며 떠들 수 있는 술자리를 조금씩 줄이면 소비가 기여가 되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첫걸음을 기반삼아 행여 큰 활동이 되려 노력하거나 강시처럼 이마에 경제적 면죄부를 붙이고 다니지 않고, 세상을 찬찬히 면밀하게 둘러보고 보잘 것 없는 손을 내미는데 그 노력을 거둬들이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이러한 반성이 끊임 없이 행위되어야 하는 당위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진보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자격 논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중대한 범위는 실은 생각의 권리와 범위이지 오로지 사적재산의 범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멈춰있지 않고 바쁘고 자유로울 때, 물질은 가야 할 곳, 공평한 쪽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나의 생각이 일단 그러하지 않고는 유물론적 가치관은 공평하지 않고 극히 사심에 의한 복무에 열중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도 현실과 괴리를 가지고 생각하는 방식은 이상주의의 조달이거나, 근본주의의 회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먹물의 기득권이라 규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기득권이라 규정하고 나면 할 일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사상과 글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새로 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이 터지는 것은 믿음을 가진 몇몇 선각자의 일이 아니라 같은 생각을 가진 민중들의 소통과 교통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일개의 민중으로 부터 내가 해야 할 일과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보잘 것 없고 어줍잖은 노동을 보태려 할 뿐이다. 내가 제도권에서 어떤 위치의 인간이냐는 입바른 명예욕과 경계지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주의가 오직 진보의 전유물은 아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가장 역사적인 철학은 이기심이다. 이로서 '여유있을 때, 세계을 둘러보겠다' 는 경제적 접근 방식이 현대를 지배하는 술어가 되었다. 세상을 둘러보는 물리적 여행과 세계를 둘러보는 사색과 의식의 범위를 쉽게 동질시 하는 안락한 금가르기는 만행에 가깝다. 인간이 오로지 이기적임을 규정하고 부터 시작하는 경제학의 토폴로지가 그 자체로도 불가능하며 우리는 편리함에서 수고스러움으로 가벼운 전환을 해야 함을 일깨운다. 하지만 그것이 현대의 가장 원형적인 이상주의인 것은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그 만족이란 것에 접근할 수 없고, 단 한번의 붓그리기로 세상의 문법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 본능적인 이기심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나의 담론은 선동적일 수 없다. 불평등한 기억에서 평등한 선동으로 맘 편하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령처럼 떠도는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를 붙들고 거대 담론을 타파하기 위한 선동으로 술자리를 이끌어야 하는 충분한 성량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감수성과 이성에 걸쳐 자본이 해결해준 것이 무엇인지, 자본의 순환고리에 매수되어 짐짓 외면 했던 이웃들의 제스쳐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활동이 되고 현상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나마 좌파라며 떠들 수 있는 술자리를 조금씩 줄이면 소비가 기여가 되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첫걸음을 기반삼아 행여 큰 활동이 되려 노력하거나 강시처럼 이마에 경제적 면죄부를 붙이고 다니지 않고, 세상을 찬찬히 면밀하게 둘러보고 보잘 것 없는 손을 내미는데 그 노력을 거둬들이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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