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향한 짝퉁 개혁과 천민자본주의의 난장은 참혹한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슬프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관성으로 벌어지는 선거판이라고 해도 누구든지 사회를 동작하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공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스스로 자본을 축적하거나 자본가처럼 생각하는 노동자가 되어 봐야 찢어지는 가랭이만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불행이도 아니다.
더욱 기가막히게도, 자신의 처지나 계급을 여전히 자신의 희망이나 자기확대의 욕망과 일치시키는 우려한 행동을 집단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농사를 지으며 한미 FTA 를 찬성하고 한우를 아껴달라고 외치는가 하면 자본주의 먹이 사슬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계급이 감히 중산층의 몰락과 나라 경제를 걱정한다. 여전히 자신의 희생이 부족함을 스스로 통곡하고 자발적 복종에 나서라 동원하는 스피커를 자청한다.
얄궂은 지식인들은 그들의 비평적 계급 활동은 줄이고 약자의 계몽과 권력 감시에서 약자 동원, 권력 집착의 듣보잡 행동으로 계급적 활동을 이동시켰다. 지식과 자본으로 무장한 계급은 약자에게 강자의 원리를 주입하며 환상과 염려를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미래의 강자라는 환상과 강자들의 사회가 무너지면 강자가 될 수 없는 염려를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회유의 단계도 없이 자발적으로 줄서기의 끄나불이라도 잡으려고 환장들을 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한결 같은 정신병리적 현상은 각론이 다른 총론에 열광한다는 점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총론을 실현하려는 특목고, 자율형사립고의 확충이라는 각론을 '참' 으로 간주한다. 자본주의 먹이 사슬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으면서 학벌이나 대학의 서열화를 없애는 총론을 이해하더라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대학 자율화와 본고사 부활이라는 각론이 이들에겐 '참' 좋은 공약이 된다. 어디 이뿐인가, 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바로 비정규직으로 2년마다 실존에 빠질 세대적 고민 또한 찾아 볼 길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자신만은 비정규직이 안되면 그만인 영혼 빠진 좀비를 자청한다.
IMF 를 짝퉁 진보의 잃어버린 10년쯤으로 생각하는 무식한 역사 의식은 그렇다치더라도 한번도 자신들의 세대를 결정해 본 경험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만한 시대적 담론은 가질 여지가 없는 자본종속적 세대에게 희망은 여전히 돈이나 버는 것이다. 이런 세대와 이런 세대를 세계화적 적응이라고 호도하는 기성 세대간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성이나 존경은 돈의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자본이 없는 기성 세대는 아버지라도 인간적 존경을 받을 권리를 박탈 당한다. 이런 세대 간극과 계급적 갈등은 오래도록 공존하기 어렵다. 언젠가 이런 토대는 혁명이 되거나 봉기가 된다.
그래서 백낙청 선생은 줄기차게 통일을 주장하는지도 모른다. 곧 닥칠 혁명이나 봉기의 폭력을 막으려고..
검색어 '자발적 복종'에 대한 2 개의 검색 결과
KTX 가 아무리 시간 혁명을 주도하고, 에어버스 A380 이 무려 555명에 달하는 손님을 한꺼번에 유럽과 미주로 실어 나른다 해도 다른 곳의 일은 다른 곳의 일이 됩니다. 적당한 이기심은 나한테, 내 집에서, 내 식구한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면 그 시공간이 어찌됐든 내일처럼 간주해주지는 않지요. 이기심을 적당히 접고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다 보면, 이렇게 바쁜 세상에 네 앞가림이나 하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목하 토익과 고시에 매달린 학생들, 염려는 아니 할 수 없겠습니다.
2월27일 단의원이 울고불고 저항해도 어쩔수 없었던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시끄럽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요즘 학생들 조용합니다.조용한 걸 보면, 내일이 아니라는 도그마가 팽배한 것이 사실인가 봅니다. 한 대기업이 특정 학교 학생들 뽑지 않겠다(K대학교 던가요?)루머를 흘리면 요즘 학생들 금새 풀이 죽습니다.(기업이 학문을 세웠다 허물었다 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취업이 무섭긴 무섭나 봅니다. 그렇지요, 생존의 문제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법안이야 말로 그대들의 생존과 직결하는 법적 장치인데도 내일처럼 여기지는 않는가 봅니다. 설마, 토익과 고시에 열심히 매달린 본인들이 비정규직은 되지 않을 거라 근거 없는 기대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프랑스 학생들의 저항을 보며, 합리적 관리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투쟁적 관심이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합니다. 민주주의의 의식과 행동의 선두에는 실천지식인으로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엔 기업논리를 강조하는 짝퉁 개혁진보세력들이 강철대오를 짜 놓았습니다. 그 대오에는 통계적 방식의 진보, 합법성을 가장한 기득권의 수성이 있을 뿐, 노동의 신성함은 없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의식을 배우지 않나 봅니다. 의식은 고전, 토익은 미래가 된 것은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천박한 무리들이 사회와 제도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상업주의의 중금속이 이제 천천히 학생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을 중독시키고 있습니다. 모두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지한 성찰은 하지 않고 '돈이나 벌지'라며 체념을 하고 맙니다.
우리의 비정규직법안은 지금 학생들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취업준비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자신이 무엇인지,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사고해보지 않고 제도권으로 쓰며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원하는 자본교환적 피의 수혈 입니다. 그것도 2년 단위로 쪼개서 말입니다. (정체성은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록 정체성과는 멀어집니다.)
그러한 비정규직법안이 날치기로 통과 되어도 전혀 불쾌함 없이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기성세대의 자발적 복종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썩었습니다. KTX 승무원의 파업으로 왜 내가 불편해야 하는지 푸념하는 세대들에게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대통령이 나서서 제도며 인프라를 왜곡해가며 인간성을 실추해 놓고 자신감 운운하는 반 칸트적인 선언을 일삼는 사회에서 특별히 깨우쳐야 하는 의식은 기대하지 못할지언정, 현안을 제대로 보는 교양 정도는 갖추고 나이는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목하 토익과 고시에 매달린 학생들, 염려는 아니 할 수 없겠습니다.
2월27일 단의원이 울고불고 저항해도 어쩔수 없었던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시끄럽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요즘 학생들 조용합니다.조용한 걸 보면, 내일이 아니라는 도그마가 팽배한 것이 사실인가 봅니다. 한 대기업이 특정 학교 학생들 뽑지 않겠다(K대학교 던가요?)루머를 흘리면 요즘 학생들 금새 풀이 죽습니다.(기업이 학문을 세웠다 허물었다 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취업이 무섭긴 무섭나 봅니다. 그렇지요, 생존의 문제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법안이야 말로 그대들의 생존과 직결하는 법적 장치인데도 내일처럼 여기지는 않는가 봅니다. 설마, 토익과 고시에 열심히 매달린 본인들이 비정규직은 되지 않을 거라 근거 없는 기대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프랑스 학생들의 저항을 보며, 합리적 관리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투쟁적 관심이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합니다. 민주주의의 의식과 행동의 선두에는 실천지식인으로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엔 기업논리를 강조하는 짝퉁 개혁진보세력들이 강철대오를 짜 놓았습니다. 그 대오에는 통계적 방식의 진보, 합법성을 가장한 기득권의 수성이 있을 뿐, 노동의 신성함은 없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의식을 배우지 않나 봅니다. 의식은 고전, 토익은 미래가 된 것은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천박한 무리들이 사회와 제도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상업주의의 중금속이 이제 천천히 학생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을 중독시키고 있습니다. 모두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지한 성찰은 하지 않고 '돈이나 벌지'라며 체념을 하고 맙니다.
우리의 비정규직법안은 지금 학생들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취업준비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자신이 무엇인지,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사고해보지 않고 제도권으로 쓰며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원하는 자본교환적 피의 수혈 입니다. 그것도 2년 단위로 쪼개서 말입니다. (정체성은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록 정체성과는 멀어집니다.)
그러한 비정규직법안이 날치기로 통과 되어도 전혀 불쾌함 없이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기성세대의 자발적 복종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썩었습니다. KTX 승무원의 파업으로 왜 내가 불편해야 하는지 푸념하는 세대들에게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대통령이 나서서 제도며 인프라를 왜곡해가며 인간성을 실추해 놓고 자신감 운운하는 반 칸트적인 선언을 일삼는 사회에서 특별히 깨우쳐야 하는 의식은 기대하지 못할지언정, 현안을 제대로 보는 교양 정도는 갖추고 나이는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