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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2 미실과 애국, 우파에 대한 단상 by DrunkenSTAR
하얀거탑의 능수능란한 칼솜씨만큼 선덕여왕은 사극의 문법을 현실정치의 맥락으로 바꿔버린 보기 드문 드라마다. 생활속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이합집산의 정치를 다룬 하얀거탑은 선덕여왕에 비하면 차라리 아기자기하다. 조금만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씬은 여의도의 날치기를, 요 씬은 대의명분을 앞세워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을 거대하게 묘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이러한 지점에서 절대선인양 그려지는 선덕여왕은 대립구도인 미실의 오묘하고 미묘한 감수성을 이기지 못한다. 하얀거탑에서 비열하기까지 한 장준혁에 동화되고 감정이 이입되던 수많은 현대인들은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에게서 그 역할을 찾고 열광한다. 자신은 왜 현실에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몸을 바쳐서라도 내 사람을 만들고 의기양양하게 "내 사람은 그러면 안된다." 말할 수 있는 배짱이 없었을까. 마치 저것이 사회생활의 다 인데, 느끼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었을까. 다시 보면 미실은 사람들의 욕망을 뭉쳐 놓은 덩어리다. 성골이 아니면서 나라의 주인이 되기를 욕망했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첨단 정치공학을 몸으로 치밀하게 수행한다. 있는 계급(기득권)은 낙점만 받으면 출세가 보장되지만 없는 계급(서민)들이 출세하기 위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방향을 미실은 발가 벗고 보여 준 셈이다. 봉건시대의 일이지만 현실과 다르지 않다.

우파는 기득권, 이란 공식이 있을지 모르나 우리나라의 현실 우파는 대략 세 부류다. 기득권을 가졌지만 애국심이 없는, 애국심은 있지만 기득권이 없는, 둘 다 있는 부류는 극소수 진성우파라 볼 수 있다. 애국심이 있지만 기득권이 없는 부류는 대체로 전쟁세대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인지라 이 나라의 기반을 다졌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빨갱이와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켰으며 그 폐허에서 물적 기반을 이뤘다는 주장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그 분들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같은 우파라는 범주에서 애국이라는 이념만 가졌을 뿐 물질 기반은 다졌으나 실물 기득권이 없어서 애국심이 없는 부류에게 지배 당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행동대를 자처 한다. 전쟁이 없고 폐허가 아닌 시대에서 그 자부심을 표출하기 위한 분노로 행동한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애국이 있기에 풍요롭다. 하지만 언제나 기득권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명분은 언제나 애국과 빨갱이다. 이 부류가 영리하기만 한다면 오늘날 완전한 미실의 부활이라 부를만 하다.

기득권을 가졌지만 애국심이 없는 부류들은 애국에 봉사하고 빨갱이에 치를 떨며 자본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부류들의 권리와 물질을 상속 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애국적 우파, 민족 우파의 이념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 되면 하고 돈이 안되면 안하는 자유주의 우파다. 이들은 실물만을 상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이념과 경제이념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것이 권리, 즉 권력이며 권력의 생성 조합이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을 만들었으나 그것을 증여하고 애국에 보험을 든 부류들은 여전히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자유주의 우파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손 벌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버렸다. 자유주의 우파는 애국적인 일에 돈을 쓰지 않는다. 빨갱이라도 노동력이 있고 동일한 물질을 추구한다면 자유주의 우파에겐 환영이다. 돈을 써서 돈이 될만 하니까 말이다. 이들에겐 민족이나 국가 개념이 없다. 그것들은 이들에게 명분일 뿐이다. 이 부류는 사익에 영리하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귀족들이다. 화백회의의 대등의 부활이라 부를만 하다.

선덕여왕에는 서민이나 백성이 존재하지 않지만 미실이 존재함으로서 계급투쟁의 역사를 그렸다. 오랑캐와 맞서 싸우는 애국투쟁의 역사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영리하지 못한 애국 우파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념을 빗대어 권리를 행사하는 오늘날 기득권층에게 계급투쟁은 살벌한 정치적 경제적 도전이기에 이 드라마는 좌빨 드라마가 된다. 이런 정의가 가능해야만 애국 우파들이 깨어나 조건 없이 행동할 수 있다. 문제는 드라마에 존재하지 않는 백성들, 오늘날의 서민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목도하는가 이다. 목도는 하겠으나 행간을 조명하진 못한다. 우파도 좌파도 아닌 그들은 언젠가 골프채에 왁스칠 하고 그저 제 새끼들 잘먹고 잘사는데 미실의 역량이 참고될 수 있냐는 것이 관심이다. 그 참고를 현실에 적용하면 십중팔구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대의 명문이 딱 하나 있다. 미실이 가진 애국 때문이다. 기껏 현실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대의란 회사를 위해, 비전을 위해 가 전부다. 차라리 내 새끼를 위해 가 휠씬 숭고하기 때문에 '내 사람' 이란 개념이 만들어 질 수 없다.

미실은 국경에 있던 군대가 자신을 돕기 위해 출병하는 보고를 받고도 그 출병을 거두고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명령으로 자신이 최후를 맞을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신국을 위한 대의를 미실은 결코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미실의 그런 숙연함을 오늘날 오마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현실이다. 애국하겠다는 사람들 조차도 어떻게 애국을 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애국은 돈을 벌어 오는 것이다. 그걸 못하는 애국 우파들에게 삶의 이유는 당연히 빨갱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여기에 논리나 정작 애국 따위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애국을 거세한 미실을, 미실의 욕망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계급과 무관하게 부자가 되는 희망으로 기득권에 투표하는 것이 그들 나름의 계급투쟁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듬는 척 실용적인 정치 수사로 현혹하여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기득권이면서 애국심이 없는 자유주의 우파들의 사명이다. 제 새끼 잘먹고 잘살아야 하는데 우파나 좌파나 애국이 뭔 상관이란 말이냐, 미실의 역량을 참고하여 어떻게든 계급투쟁의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데 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영리하고 사려 깊은 중도 서민들이다.

하지만 어찌하냐.. 미실은 죽었다.
2009/11/12 12:59 2009/11/12 12:59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