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육류를 판매하는 에이미트 홈페이지에 가 보니 어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기사를 공지사항으로 올려 놓았다. 김민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서라도 미국산 쇠고기 매출에 이바지 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치고 받을 것이 뻔한 기사를 자사 홈페이지에도 올려 놓는 저 대범함과 업자 다운 마케팅 기법은 아마도 그들 세계에서는 분통 터질 일에 한가닥 희망이었을 것이다. "박씨가 하는 것 봐서 우리도 따라하자", 박창규 사장이 다른 업자들의 줄소송을 예고까지 했으니 그들끼리 쇠고기 굽던 술자리에서 의기 투합은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듯 하다. 게다가 언론플래이를 통한 반사이익이 정량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정성적으론 성공적이라 자평할 수도 있겠다. 소송은 몰라도 촛불 당시 글 한줄, 말 한마디 한 다른 연예인들 명단을 두고 서로 나눠서 각개 격파를 도모할지도 모르겠다. 소송,  광우의 성질을 타고난 정치인들의 어시스트, 언론을 통한 으름장, 아무리 생각해도 견적은 적게 들면서 효과적인 마케팅 전술이 아닐 수 없다.

박창규 사장의 버르장머리 발언은 민주주의로 까지 연결된다. 정부가 인민들의 입을 틀어 막더니 업자까지 소송을 통해 입막음을 한다 는데 사실 4300억원을 손해 봤다는데 3억원 배상하라는 숫자 논리는 업자의 입장에서 계산법이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버르장머리 로 의도가 파악되듯이 나머지 4297억에 대한 손해배상을 PD 수첩, MBC, 광우병대책회의 등에 전가는 시켜야 겠는데 버르장머리로는 안되는 것이 이 사람들 나이가 30살 김민선씨 처럼 자신의 아들딸뻘도 아니고 사회각층의 지지세력과 의견그룹 하다 못해 정치인이고 법조인들이 태반이다 보니 자신들도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계산법이 어그러진 것이라 보인다. 논리나 상식이 아닌 버르장머리로 해결 하려는 것, 이른바 가부장적 사장들의 습성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들에게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이들에게 세상 모든 것은 교환과 거래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아닌 것은 가치가 아니다. 그런 뇌구조에 민주주의라? 개가 막 풀을 뜯어 먹는다.

인터뷰를 꼼꼼이 읽으며 그들의 고충과 손해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버르장머리 라는 전통(?)이 오늘날에는 규범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물론, 개인의 인생에서 조건 없는 예절이 적용되는 관계에서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행위와 소송을 거는 행위가 다른 것쯤은 이해하리라 믿는다. 문제는 이런 해괴한 논리를 주저 없이 펼친다는데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 민주주의의 새로운 억압세력의 등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데 있다. 글세 이것이 공포일까? 물론, 김민선씨에게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고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 고통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을 CEO 출신이라 주장하는 대통령을 뽑고 나서 우리의 일상, 민주적이었다고 믿었던 일상은 하루도 빠짐 없이 그 믿음을 시험 받고 있다. 생각해보라, 박창규 사장의 버르장머리나 기타 등등의 발언은 정작 MB 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다. 대통령만 아니었으면 옆에서 말리지만 않았으면 국민 전체를 상대로 버르장머리를 고치고 소송을 불사할 사람이다. 자신의 무식을 사사건건 돌발적으로 영상화 시키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 안녕히 주무시라 하지 않고 정신 차릴 사람들 많다며 대놓고 비난하는 데스크가 있질 않나, 이러한 명예훼손과 모욕의 피해는 적어도 300억 이상이라 생각하고도 남음 이다. 여전히 CEO 였다면 말이다.

우리는 또 시험대에 올랐다. 김민선씨의 일상을 담보로 말이다. 공포를 느끼기 전에 분노를 느껴야 하며 걱정을 하기 전에 복수를 떠올리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공통으로 겪는 시험대에서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또는 김민선씨와 같은 다른 이들의 삶을 소환하여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시험을 치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공포네 걱정이네 하는 것은 허약한 뒷모습을 보이는 꼴이다. 엣지 있게 분노를 느끼고 복수를 품자.
2009/08/14 14:44 2009/08/14 14:44
DrunkenSTAR 이 작성.

오늘은 깃발을 들었다. 깃발은 처음 드는 것이라 좀 겁이 났다. 그랬을까, 순간 '깃발 앞으로' 란 외침이 대오의 앞에서 부터 전달 되어 이어졌다. 나중에 안 이유지만 경찰이 소화기를 뿌리면 깃발을 흔들어 소화분말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 깃발은 앞에 선다. 오늘은 어떤 세상이건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세상은 지금 이 세상보다 분명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명박의 치졸한 말 바꿈이나 인간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반성 따위가 이명박이나 이 정권의 덩어리들에게 바란다는게 얼마나 순진한 인간다운 정념인지 깨달았다. 시민들은 흥분했다. 백주 대낮에 주부, 국회의원, 노인의 사지를 들어 연행하더니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연행했다는 믿기 힘든 사실에 자유발언이나 연좌 따위로 시간을 끌지 말자고 들썩였다. 새문안 교회 골목으로 수천명의 시민들이 진입을 시도했다. 틈은 좁았다. 어김없이 소화기 분말이 뿌려졌고 순식간에 전경 2명이 끌려 나왔다. 몇명은 발길질을 했고 몇명은 그들의 무장을 해체 시켰다. 나는 순간 풀어줘라 고 소리쳤다. 전경 둘은 대오 끝으로 끌려갔고 뒤쫓아간 사람들은 풀어주라는 쪽과 풀어주지 말라는 쪽으로 갈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풀려났고 전경 무리로 돌아 갔다. 살수차가 머리 위를 맴돈다. 방송을 하던 여경은 불법집회, 폭력행위를 중단하라고 신경질을 내기 시작한다. 이 여경도 이준기에게 충고를 하던 현직 경찰관처럼 한번도 불법이나 폭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투다. 매일 밤마다 해방구가 되는 세종로사거리의 시민들에게 불법이나 폭력이니 하는 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불법은 불복종으로 그 폭력은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적어도 스스로 학습한 시민들이다. 여기저기서 프락치와 조중동 기자들이 잡혀 시민들에 둘러 쌓여 있다. 서슬 퍼런 시민 수백명에 포위되어 언어적 린치를 당하고 있는 이들의 눈은 잔득 겁에 질려 있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행한 패악질을 반성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이명박과 한덩어리다. 절대 반성하고 재학습할 인간들이 아니다. 새문안 교회 골목은 앞에서 살수하고 골목 뒤에서 막으면 여지 없이 토끼몰이가 되는 지형이다. 빠져 나와야 했다. 겨우 1~2천명이선 어렵다. 이쪽은 뚫어 내기 힘들다. 여기저기서 주차장 담을 넘어 다시 진입을 시도하고 뚫렸다는 섣부른 정보가 전달되었다. 대오 끝으로 나오자 금강제화 골목을 막고 있던 전경버스 한대에 밧줄을 묶어 시민 수십명이 끌어 내는 중이다. 세종로 사거리와 새문안 교회 골목, 금강제화 골목, 시민들은 세방향에서 진입을 시도 중이지만 대오가 뭉쳐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도부의 부재. 지도부가 시위를 조직적으로 이끌 필요성 보다는 지도부가 없는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곳곳에서 부상이 더 심하다. 곧 살수차에서 무시무시한 압력의 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애초에 소통이란 이 정권의 두뇌속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그 립서비스 마저도 철회했기 때문에 더욱 빨리 살수될 것이다. 이명박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호사다. 하지만 이제 무엇으로 승리할 것인가. 사람들은 추가 협상을 했으니 이제 그만 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문제다.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촛불 들고 소풍 나온 사람들의 입은 이처럼 가볍다. 이런 사람들이 도로 이명박을 만든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주권자가 요구한 사항이 관철 될 때까지 절대 물러서자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이 정도에서 물러 난다면 시민행동과 항쟁의 역사에 깊은 패배주의를 남길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종말을 의미한다. 아직은 민주주의다. 이명박은 우리 힘으로 하야 시킬 수 있다. 우리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다.

2008/06/26 03:46 2008/06/26 03:46
DrunkenSTAR 이 작성.

이명박 정권은 참으로 놀라운 발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역사에 기리 남을 치졸하고 지독한 집단이다. 이명박이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해서 정신상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말도 안되는 양보라는 것을 작금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행태를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이러한 집단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창피스러운 민주적 선거가 이 나라의 정체성이다. 이명박 정권이 선전하고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란 바로 거리에서 일어나는 무차별적인 공권력 남용, 폭력적이며 불법적으로 일어나는 강제 연행, 게다가 노인 초등학생 국회의원 할 것 없이 매우 공평하게 이뤄지는 대민중 폭력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다.

이젠 집회에 지도부와 투쟁 전선과 조직이 필요할 때다. 더 이상 이 정권의 말기적 정신분열 현상을 두고 보며 한가하게 밤샘 토론 따위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젠 쇠고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을 정확하게 겨냥한 노선이 필요하다. 이 정권은 절대 소통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절대 깨달을 수 없는 무지한 집단이다. 이 정권이 촛불 집회 따위로 계몽될 것이란 것도 바뀔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얼마나 순진한 유아적 발상인지 전혀 새삼스럽지 않게 각인된다. 촛불 집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창피스러운 정권이 탄생된 신자유주의적 마음을 반성함으로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촛불은 바로 이명박을 겨눠야 한다. 어느 교양머리 없는 국회의원 따위가 촛불 짓이 천민 짓이라고 하는데,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천민들이 정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 보여줄 때다.

2008/06/25 18:01 2008/06/25 18:01
DrunkenSTAR 이 작성.

아침에 출근하다보니 무심한 담벼락에 관할 경찰서에서 부쳐 놓은 푯말이 보인다. "경찰은 항상 국민의 편에서 생각합니다" 경찰은 담벼락에 팻말 뿐만 아니라 무심한 도시 곳곳에 국민을 향한 갖가지 애정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영화배우 이준기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촛불문화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려 놓았나 보다. 이를 보고 어느 현직 경찰관이 반론을 한 기사를 보았다. 요지는 '촛불문화제는 더 이상 현행법상 평화로운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해산 시킬 수 밖에 없다' 는 것이다. 짐짓 이준기씨한테 어른으로써 충고와 타이름까지 덧부치는 글을 보니 오늘 아침 무심한 담벼락에 붙어 있던 경찰의 푯말의 생각났다. 역시, 립싱크인 것을 확인시켜 줄 것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현직 경찰관에게 현행법 좀 무시해주고 마음속의 얘기를 들어 달라고 관념적인 요청을 할 이유는 없다. 그 또한 추후도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한발도 전진하지 않는 호두껍질의 단단함을 천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위법행위자는 경찰의 연행에 순순히 동행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현직 경찰관의 비애는 그래서 강제적일 수 밖에 없는 연행의 절차를 '강제적' 이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니까 절대 불법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찰의 행위는 '항상' 정당하기에 그렇다는 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러하니 촛불집회에는 비보이가 나와 랩에 맞춰 공연하고 이를 구경하고 돌아가면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한다. 그는 촛불집회를 그저그런 '하이 서울 패스티발'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상황이 아주 평화롭지 않고 게다가 집시법 14조에 의거 주최자는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의 질서를 문란케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15명의 전의경이 시위현장에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쓰러지고 머리 터지고 방패에 찍힌 촛불집회참가자들 수를 취합해 들이 대고 부등식을 하자는 얘기인가? 누가 더 얻어 터졌는지, 그런 것을 상호 견주어 보자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보호 할 사람에게 맞는 것과 보호 받을 줄 알았던 사람에게 맞은 것의 차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다. 글세, 경찰과 국민의 차이가 어떤 차이인지 경찰임용교육과정엔 없는 것일까?

도로점거만을 준법의 준거로 삼는 현직 경찰관의 말은 역시 현직은 현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 이렇게 얄굿게 들릴까. 이는 오래도록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준법의식에 또아리를 튼 대표적인 인식의 한계와 같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킬 민주화의 과정에도 이 무단 거리 점거의 준법의식은 경찰의 주된 자세였다. 민주화건 뭐건 광장과 거리를 지키는 경찰의 모습은 민주화 이후에도 똑 같은 경찰의 모토다. 왜 민주화가 필요한지, 왜 저들은 저런 주장을 하는지, 경찰의 수동적이며 관성적인 거리지키기의 강제적 연행방식을 알면서도 왜 저들은 거리로 나오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무지한 인식의 한계가 오늘 서울 거리에서 시민과 경찰이 대치할 수 밖에 없는 방점인 것이다. 민주화를 이루는 것도 미친소를 먹지 않는 것도 교통 보다 중요하지 않고 그런 주장이 있다면 조용히 집구석에서 평화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반민주적인 경찰들이 짐짓 충고어린 말투로 가증스러운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대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한계를 양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주장을 자율적으로 주장해본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왜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들은 사용자들의 영업을 방해하다가 경찰에 강제로 연행될까? 왜 사람들은 경찰이 수십명을 연행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도 다음날 거리에 나와 자발적으로 닭장차에 올라타고 '나를 연행하라' 며 스스로를 고발할까? 마음속의 울림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옮다고 믿고, 그렇지 아니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을 표현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의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같은 거리에서도 누군가는 우리 모두 미친소를 먹지 않아야 된다고 외치는데 누군가는 재미나게 공연 감상하다가 거리로 나오기만 하면 폭력적으로 연행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해시킬 수도 없다. 정말 불가피하게 거리로 나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자유권을 내던지면서까지 공공을 위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그런 주장을 집에서 소리 높여 평화롭게 외치면 국가는 그것을 들어주었던가? 현직 경찰관인 당신이 경찰이 될 수 있었고 당신이 가정에서 민주적이며 사람답게 살아 가며 당신의 가족 모두가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야만 하는 고귀한 일이 오직 당신이 어느날 고시학원에서 밤낮으로 공부한 경찰 시험 때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집회, 결사, 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하고 그것을 방해할 어떠한 공권력이나 외부 압력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이 나라의 헌법이고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당히 거부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의 마땅한 권리이며 존엄인데다가 그것이 1987년부터 이 나라가 작동한 방식이다. 자신들도 연행될 수 있고 얼마간 자유를 박탈당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계에 지장을 받을 것인데도 왜 거리에 나와 저항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뤘던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이 그러했기 때문이고 누가 이해시켜주지 않아도 그것을 이어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잡아 가라, 잡아 가지 말라고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찰들이 한가롭게 거리점거를 운운할 때 시민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학습하고 그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20년전 항쟁의 그것보다 더한 시대정신을 지닌 시민들이 뭉치고 있는데 이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한번이라도 그런 이유를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것이다. 현직 경찰관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경찰관을 해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설프게 집시법 2개 조항을 들먹이며 가당치도 않는 충고를 늘어 놓기 전에 말이다.

이준기씨에게 띄우는 현직 경찰관의 글
2008/05/29 14:53 2008/05/29 14:53
DrunkenSTAR 이 작성.

아침이슬

2008/05/27 13:08 / 생각

이렇게 된 이상,
다시 아침이슬이다.
아가야, 이제 아빠도 촛불을 들어야 겠다.
아가야, 울지마, 아침에 새 세상과 함께 돌아 올테니..

2008/05/27 13:08 2008/05/27 13:08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