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고 구린 세대

2008/04/11 15:17 / 생각

사회란 기가막힌 구석이 있어서 항생제며 뽕이며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기꺼이 맞아 줄 수 있는 넓고 튼튼한 허벅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이 사회의 지향이 어떤 초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 허벅지의 뼈는 무뎌져 제 힘으로 걸을 수 없게 된다. 오늘을 가르는 가장 초현실적인 화살은 '가난하지만 열심히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이다. 철 모르는 20대의 보수적 반란으로 선거 결과의 책임을 돌리는 일 따위에 의미가 있을까? 20대가 그렇게 된 것도 이 부질 없는 희망을 동력으로 한 정교한 시스템이 그들의 생활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짐짓 20대의 정치의식을 비판의 도마위에 올려 놓아봐야 비난만 무성할 뿐이다. 다만 엉망친장이 된 허벅지에 여전히 뽕을 주사하며 초현실을 넘어 초자아의 세계에게 게토된 가치를 용감무쌍하게 꺼내 들고만 영,호남의 지역주의야 말로 우리 정치사의 진정한 해로움이 아닐까.

20대가 병신 쪼다라고? 그들은 비웃을 것이다. 386처럼 공상을 헤메는 유아적인 실수는 하지 않는다고, 자기네들은 최소한 이 세상에서 이웃을 치고 동지의 뒷덜미를 잡아도 나는 좀 살아야 할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이다.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도서관에 짱박혀 취업공부하는 순수함이 그들 생활의 방점인 셈이다. 그들이 쪼다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영남에서 한나라당 나고 호남에서 민주당 나는 이 오래된 진부함 보다야 휠씬 진보적인 것이 20대다. 20대보다 더 해로운 세대는 영남 사람이니까 한나라당(또는 정책도 정치도 없는 친박연대 같은 개그맨집단)찍고 호남 사람이니까 민주당(또는 벽에 똥칠해도 김대중이란 정서만 남은 가신집단)찍어라고 해묵은 주사액을 허벅지에 꽂으며 지들 자식들에게는 '가난하지만 열심히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고 허튼 희망을 오토리버스 시키는 후지고 구린 세대다.

이제 값비싼 수업료를 치룰 일만 남았다. 사교육이던, 의료보험당연지정제던, 대운하건 간에 살아 남기 위해 이웃을 치고 동지의 뒷덜미를 잡아 끌 묘안과 체세술이 서점을 메우고 주점의 안주꺼리가 될 것이다. 구리고 후진 세대야 허벅지에 뽕 맞고 정신 놓아 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수업료를 두고두고 쌓아 놓고 이자 물고 신용불량자될 세대에게 오로지 열심히만 하라는 희망만 물려 준 것을 두고 20대의 보수화, 반란이라 추리긴 어렵다. 그 보다 더 해로운 세대가 있었기에 이 모든 아찔함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찔함은 현실에 더 잘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노력이 현실 순응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고 그 핑계가 절대 미래를 보장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후지고 구린 세대는 확실히 있다, 그렇다고 그 핑계가 우리 모두의 사회적 수업료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2008/04/11 15:17 2008/04/11 15:17
DrunkenSTAR 이 작성.

저는 13번 입니다.

2008/04/08 14:40 / 생각




2008/04/08 14:40 2008/04/08 14:40
DrunkenSTAR 이 작성.

투표란?

2008/04/08 02:18 / 생각
"민생이 바뀝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대표 표어다. 이 정당에 투표하면 민생은 변할 것인가? 내 생각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봐라, 정당정치의 진정성은 없고 살리지도 못할 경제에 내몰린 다수결만 붙들고 있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이 정당의 공동대표 2명이 지역구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것 같은가? 좀 더 거들어서 정당지지도를 높혀 비례대표로 한 두석 더 얻는다고 치자, 원내 4명이서 민생을 바꾸겠다고? 295 의 다수결은 어떻하고? 절대 그들이 원하는 지속 가능하고 좋은 민생으로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는 곳에 투표하는 것이 맞겠다.

1000만원 등록금 때문에 격년으로 휴학하고 GS25 에서 날밤까는 아들, 딸을 위해 재산 100억 신고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면 언젠가는 연소득 4만불 된다고 하니 그곳에 투표하면 된다. GS25 의 시급이 터무니 없이 쥐꼬리 같다면 대운하 착공을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여 백골단에 쫓길지도 모를 어느 비정규직 보다 잡무에 시급이 짭짤할 수 있으니 말이다. 투표장 인근에서 삽 하나씩 사가지고 오는 센스를 발휘하시길. 게다가 장기 근무할까봐 대운하 공사 기간을 숨기고 있는데 몇몇 좌파 빨갱이 교수며 지식인들이 10년도 더 걸릴수도 있다고 하니 이번에 한번 인생 올인해보는 것도 한 방법, 인생 모 있어, 한방이지. 볼따귀 살짝 꼬집었다고 말만한 처녀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성희롱이라고 소리치는 세상 말이다, 우리 나라 축구 살리려고 세상 곳곳에서 폭탄주 마시느라 노인정에서 할머니들하고 놀아주는 것도 힘든 양반 간쪼그라들게 만드는 미친X 없는 세상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당당하게 대낮엔 아무 볼이나 꼬집고 어두워지면 아무 젖가슴이나 주물럭 거려도 되는 성개방된 세상 만들 수 있는 곳에 투표하면 된다. 어디 이것 뿐인가, 시장경제주의, 비즈니스 프랜들리는 죄다 재래시장 경기 살리자는 말 아니던가, 이렇게까지 재래시장을 위해주던 사람들이 또 어디 있었던가, 떡볶이 장사도 비즈니스이니 곧 3만원짜리 꼬리곰탕이 아니라 떡볶이가 청와대 점심만찬 공식 메뉴로 등장할 신명나는 세상이 될터이니 그곳에 투표하면 된다. 교육이 이렇게 된 건 죄다 양심에 털난 노빠들 때문이다. 개념 있는 대학에 자율을 주고 애들을 경쟁시켜야지 평준화시켜서는 안된다. 애들이 이렇게 공부를 안하는 건 순전히 평준화 때문인데다가 라이벌이 없어서 이렇게 된 거다. 조지게 패서라도 공부를 시켜야 되는데 학교는 학원보다 느긋하다. 사람은 어느 대학 가느냐에 따라 그게 사람될 놈인지 짐승될 놈인지 아는 거다. 공부하다 죽는 애들도 없는데 어륀지나 가져다 주고 죽도록 문제집 풀게 만들 수 있는, 그곳에 투표하면 된다. 이도 저도 싫으면 정치를 개그의 한 장르로 승화시킨 위대한 분들이 연대한 곳에 투표하는 것도 한 방법. 이분들 덕택에 곧 '여당', '야당' 이란 당 이름도 등장할 듯.

사표란 무엇인가?
제 처지를 모르고 찍어 대는 양심의 개털.
2008/04/08 02:18 2008/04/08 02:18
DrunkenSTAR 이 작성.

오늘날 희망이란 단어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는데다가 희망이 언어의 범주와 슬며시 이별하여 '희망' 이란 단어가 있었지? 추억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될 지경이다. 이쯤되면 분노는 세련됨을 잃고 거칠어진다. 이념따위로 무장한 논리도 희망이란 엔돌핀이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을 돌아 다닐 수 있을 때 하는 얘기다.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가 방어하고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보다 더한 정치상황을 빗대어 제사회가 그것보다 덜하니 더 참고 더 견뎌야 한다는 논리는 그럴싸 하지도 않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희망' 자체가 어려워졌으며 희망이 지닌 무궁한 범주 또한 좁아져 버렸다. 대박을 쫓고 대박만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절망은 희망보다 쉽고 더 깊어졌다.

제로섬 게임인 자본주의에서 확률적으로도 대박은 1%안에서도 이뤄지기 힘든 우연이지만 이를 쫓는 99%에게는 언제부터인가 희망보다 절망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언어가 되버렸다. 현대사회는 희망이니 절망이니 하는 관념적 단어가 디테일해진다. 예컨데, 14조원의 무역수지 흑자는 19조원의 해외펀드 손실액이 날려 버렸다는 식으로 디테일한 절망이 우리의 관념적 희망마저 날려버리는 것이다.

마치 더 견뎌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빼앗아 와야 한다. 자본주의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국은행에서 돈을 따오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정책입안자들은 민중이 절망에 접근하는 매우 일반적인 경로를 시스템으로 깨줘야 한다. 우리는 다 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좀 더 경쟁하여 빼앗아 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책임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계몽하고 선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제는 고소영, 강부자, 명계남으로 코미디된 정권의 도덕적 상식적 무소유를 복기하는 일도 지겹다. 어물어물 하다 국가가 바뀌었고 지속가능한 '나은 삶' 의 열망 또한 금기시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스스로 5년동안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자 하는데 더 이상 무엇을 말리고 저항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 또한 절망에 쉽게 방점을 찍어 버리고 냉소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도 바람은 분다. 옥탑 위에 빤스를 널던 여자가 혼잣말 한다. 오늘 빨래 잘 마르겠다고.. 문득, 서럽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러워서 살아야 하는 실존이 기가 막힐 따름이지만 집안에 묵혀 두었던 빤스를 빨아 널어 보려 한다. 나은 삶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어 두고 서러워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말려 보자.. 참여연대 회원으로 진보신당 당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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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3 14:53 2008/04/03 14:53
DrunkenSTAR 이 작성.

이용득의 해로움

2008/03/26 15:17 / 동물

이용득 전 한국노총위원장과 같은 사람이야 말로 존경은 고사하고 대접 받을 수 없는 어른의 전형이다. 배울 점이라고는 '멍충이가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는 만사의 교훈 뿐이다. 선거를 백주대낮에 뿌려지는 돈다발쯤으로 생각하는 집단과 정책연대를 한다는 발상자체가 판타지 아니었던가. 생각이라고는 돈되는 곳 개발하자와 때려 잡자 빨갱이 밖에 없는 아메바들의 기억력을 철석 같이 믿고 온갖 거짓된 액면(새 지도부가 강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위원장 선거에 불출마 한다, 총선 출마용도 아니고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더니 정책연대의 완성을 위해 비례대표에 출마한다는 따위)을 팬티에 질질 흘리고 다니던 그는 아메바에 가끔 속기도 하는 3살 짜리 정치인이었다. 한나라당의 차때기 메뉴얼도 숙지 하지 못한 그가 감히 앉아서 권력의 개평을 받아 먹으려 하니 아무리 아베바 집단이라고 해도 줄서는 기준은 있는지라 그의 팽은 아메바의 망각이 아니라 아메바의 기억에서 오래전부터 이용과 배제를 넘나 들었던 존재 였을 것이 분명하다.

이용득은 '속았다'고 했다. 이 말은 이미 그가 총선에 출마 할 뜻이 없다며 거짓말을 하고 다닐 때부터 한나라당과 모종의 합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위원장이라는 상징을 통해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70만 한국노총 조합원이 졸지에 이용득의 사리사욕에 동원된 '덩어리' 가 되었는데도 그는 양지에서 뻣뻣한 목을 자랑하고픈 금뱃지 청사진에 황홀했을터다. 사회적 영향이 큰, 작지 않은 공동체를 상징 했고 한때는 인간과는 결코 끊어 질 수 없는 노동의 위대함을 전파했던 한사람의 몰락에는 그 덩어리에게 조차도 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살인을 해야 만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가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은 그나마 참 잘된 일이다. 더 이상의 정신 분열적 패악질을 예방한 것이니 말이다. 그가 해로운 이유는 그가 노동운동을 하다 갑자기 비즈니스 프랜들리 해진 것이 아니라 돈이 되면 뭐든 개발하고 빨갱이들은 때려 잡을 수록 좋다는 구린 생각에 노동이나 진보가 얼마든지 들러리 설 수 있음을 떠들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은 너무 가혹하고 끔찍하다.

[우리는 무엇인가]

2008/03/26 15:17 2008/03/26 15:17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