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하진 않지만 사려 깊은 고용주로 인해 나는 어느 회사의 임원이다. IT 회사고 꽤 큰데다가 유명하기까지 하다. 누구는 치사한 일이고 옹졸한 일이지 않느냐 고 하는데 할 수 없다. 내가 주도하는 리쿠루팅에선 경찰 출신은 그(녀)가 의경이던 전경이던 직업 경찰 출신이던 간에 제 아무리 뽐낼만한 경력이 있다해도 절대 내가 다니는 회사에 취업할 수 없을 것이다. 주도하지 않는 리쿠루팅이라도 설득 권고할 생각이다. 나아가 뜻이 있는 협회 임원들과 사석에서 만나 의견을 나누고 같은 생각이 있었거나 어이 없고 울분이 있었던 분들이 계시는지 확인하고 연대할 생각이다. 사람을 뽑을 때는 여러 지표와 기준이 있다. 그 중에도 인격과 더불어 일할 수 있는 양보, 사업을 이끌 수 있는 개인적 신념 등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러한 정성적 평가는 면접관마다 다른데 최근 경찰이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주는 언행에 비추어 보면 경찰 출신이란 객관적 사실만으로도 인간의 마땅한 교양, 인간적 양보와 자세가 상실되었거나 결여치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로서 나무랄 때가 없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의경, 전경들은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상관 내지는 물리적 상관이 아닌 상관의 그런 명령 따위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뭐라 불이익을 줄 순 없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격과 관용의 여지는 그들에게도 충분히 있다. 인간이 마땅히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상식 수준의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그저 명령이란 것을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 밖에 없다는 변호인데 수용할 수 없다. 그런 인간의 가치관이란 언제나 남의 주장을 따라가고 남의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는데 열정을 쏟을 부류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어느 정신 못차리는 자본주의 기업에서 뽑아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겠는가. 이익만 쫒는 기업에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성 좋은 사람이 팀빌딩 잘해서 성과 내고 인격 좋은 사람이 리더 한다. 따라서 이것은 진보, 좌파, 시위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빨갱이, 북조선, 인간성 회복, 똘레랑스 하다 못해 이명박을 위한 일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위한 일이다.
고전적인 개념에서 회사는 노동, 토지, 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개념은 초기 자본주의의 제조업 중심의 개념에 머무른다. 오늘날 수많은 회사는 자본과 지식으로 이루어 진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지식경영이나 창조경영의 핵심이 바로 지식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자본의 유통을 통해 지배력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러한 회사는 대체로 노동의 개념을 조직의 개념으로 둔갑시킨다. 조직의 개념이란 개인 단위의 노동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단위의 생산력을 측정한다. 조직 단위의 생산력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의 강약으로 계산되지 않고 효율성으로 계산된다. 효율성의 증감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일정량의 노동과 시간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도달로 측정하기 때문에 효율성의 증대를 꾀하기 위해서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는 사용자들의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오늘날의 회사에는 자본, 지식,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움직이는 것은 생산력과 효율성이다. 회사에서 노동은 사라졌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난 인간에게 노동은 정해진 시간이 있다. 즉, 할 수 있을 때와 할 수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노동을 생계 유지라는 기능으로만 측정할 수 없고 토지나 자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문적 개념이 포함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노동을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생계가 유지되고 개별적인 자아를 실현한다. 굳이 생계의 수단이 아닌 노동을 할 때에도 인간은 자아를 찾게 된다. 이것은 노동이 개인의 이기적 욕구 뿐만 아니라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결정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절반의 고독과 절반의 소통으로 이루어 진다. 소통은 타인과 공유하는 의견과 타인과 관계하는 노동으로 고독만으로 관찰되지 않는 상호 작용이다. 흔히들 사회에 나간다는 얘기는 회사를 통해 직업을 가진다는 얘기다. 현대 사회를 사는 사회인은 회사나 직업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쓴다. 이로 인해 직업은 자아 실현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 회사에는 지식과 자본이 노동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상호 작용은 하고 있지만 지식과 자본으로 소통하고 있기에 상호 작용의 대상과 소외되어 언제나 고독하다.
IMF 사태 이후 회사는 무너졌다. 하지만 회사는 자본과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신자유주의 플랫폼으로 다시 살아 났다. 실제로 무너진 것은 인간이고 인간의 노동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계측화시키기 위해 이른바 국제 기준이라는 각종 수치를 도입했다. 이러한 기준은 글로벌 스탠다드 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회사 나아가 사회 구조를 조정하기에 이른다. 노동을 할 수 없는 나이를 내림으로서 노동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최대한 자본을 축적해야 하는 강도 높은 긴장을 주입한다. 일시적으로 노동을 할 수 없는 시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더 이상 그 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글로벌 스탠다드의 수치로 측정되지 못하는 노동은 어떠한 경우라도 보장 받지 못한다. 회사의 조직은 이러한 표준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능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인간이 왜 노동을 멈춰야 했고 언제 노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문적 사유는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정확히 노동자는 개인의 단위 노동만으로는 노동을 할 수 없는 시간에 인간적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노동을 숭고하게 생각하는 인문적 관점을 버리고 자본의 이동과 축적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자본가와 같이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회사에서 노동으로 종사하지 않게 되었다. 자본은 쉽게 노동을 잠식했고 자본을 위한 종사와 복무의 상태로 전락시켜 버렸다.
회사는 이익을 창출한다. 노동이 사라진 회사에서 창출하는 이익은 자본의 이익이지 노동의 이익이 아니다. 회사는 이익구조인데 인간은 그 이익구조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다. 노동을 아무리 해도 조직은 개인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자본가 다운 생각을 해도 회사는 이익을 나눠주지 않는데다가 자본시장은 노동자의 임금을 공격할 뿐 잉여자본을 분배하지 않는다. 자본시장의 자본은 신자유주의의 통화 정책에 따라 축적된 자본으로만 유입된다. 탈근대적인 신자유주의의 구조는 열심히 일해도 노동임금이 늘어 나거나 생계의 긴장을 여가의 여유로 돌릴 수 없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도 인간은 노동을 할 수 없을 때, 사회 자본이나 공공 기금으로 인간의 품위를 보장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노동을 흡수한 회사는 공공적 성격이나 하물려 타인과 소통을 일으켜 자아를 실현하는 그 어떤 속성도 부정하고 있다. 즉, 회사는 이익 집단이며 주주 관계에 의해서만 이해와 상호작용을 인정한다. 오늘날 노동의 왜곡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화폐의 왜곡 만큼이나 심해서 노동자 조차도 회사의 이익이 온전히 노동임금으로 돌아 오고 능력에 따라 차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노동을 할 수 없을 때 사회 안전망을 통해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회사가 일조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간단히 노동자 임금을 인플레이션으로 빼앗을 수 있다. 자본시장은 자본가처럼 생각하는 노동자 임금을 간단히 환율과 지배구조로 제압할 수 있다.
노동이 사라진 회사에는 윤리도 사라졌다. 누구도 회사의 목적이 이익 창출이며 주주 관계에 의해서만 이익과 자본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는 더 이상 윤리가 필요 없게 되었다. 회사는 공공연히 가치 경영을 얘기한다. 이익과 자본의 창출을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해도 윤리에 하자가 없게 되자 회사는 노동도 공공의 선도 사회 안전망도 인간의 품위도 가치 경영의 플랫폼에서 명령 받아야 되는 존재, 즉 자율성이 없는 가치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회사는 직업을 생성하고 직업에 가질 노동자를 고용하여 다른 노동자와 자율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자아와 자본을 창출하고 창출된 자본을 노동자들에게 분배하고 자아를 가진 노동자와 함께 사회 공공적 활동에 이익을 재분배하는 순기능을 모두 잃어 버렸다. 회사는 가정과 함께 사회를 거의 양분하고 일부분을 학교에 내어주고 있다. 적어도 현대 사회는 그렇다. 자본가도 자본을 생각하고 노동자도 자본을 생각하는 회사에서 인간이나 노동의 위치는 자본보다 못하다. 자본이 오로지 회사와 노동자간에서 움직이는 폐쇄적인 화폐로 인식하는 노동자가 자본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시장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결국 노동자는 노동을 할 수 있을 때의 임금과 노동을 할 수 없을 때 돌봐줄 사회를 시장에 내놓고 있는 것이다. 가정은 시장의 명령에 의해 가정의 역할을 재설정하고 학교는 자본의 명령에 의해 회사에서 자본을 창출하고 시장에서 임금을 빼앗길 노동 없는 노동자를 생산하여 수혈하기 바쁘다.
노동이 사라진 회사에는 자본과 노동자의 증오만 남아 있다. 회사가 추구하고 선전하는 모든 인간적 가치는 착취 당한 노동을 위로하여 자본 창출을 위해 재조직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늘날 회사의 가치는 모두 거짓이며 이러한 거짓에 저항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학하고 자멸하고 말 것이다. 회사는 사라졌다. 분명하건데 곧이어 가정과 학교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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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2009/09/07 15:0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경찰출신 리쿠루팅에 대해 지금도 생각이 변함없으신가요?
말씀하신대로 경찰이 보여주는 버라이어티만으로도 그 출신들의 인성과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내리는 데 무리가 없긴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나약하고 주위환경에 의해 영향을 잘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경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서요.
DrunkenSTAR 2009/09/09 12:58 편집/삭제 댓글 주소
유연하게 생각해보려 노력 중입니다...
Objetsfabuleux 2009/09/09 13:5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제 절친한 친구도 전경출신입니다만.. 인간의 마땅한 교양, 인간적 양보와 자세 이런걸 전경출신이라고 다 상실하고 사는 것은 아닌듯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지구촌 빈곤과 제3세계 개발도상국 문제에 힘을 보태려 아프리카로 중동으로, 험한곳만 찾아다니며 20대를 보내고 있는 성실한 청년입니다. :)
장기체류한 나라들이 다 요주의국가(미국관점에서요)라 뉴욕공항에서 심사랍시고 열몇시간을 억류당하기도 했었다는군요 ^^;; 님의 편견아닌 편견을 깨줄만한 멋진 젊은이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DrunkenSTAR 2009/09/16 11:19 편집/삭제 댓글 주소
네 그런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윗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게 이래저래 일반화 입니다. 물론 그런 젊은이들도 많겠지요, 저도 유연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말섞을 때도 조심하고자 합니다만, 여전히 경찰에 대한 편견은 유효 합니다. 경찰은 계속 국민을 이렇게 다루겠지요... 저도 제 오지랖에선 경찰, 그 출신들에게 불이익 할 생각 입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이명박만만세 2009/12/21 19:00 편집/삭제 댓글 주소
편견을 깨줄만한 멋진 젊은이들도 많이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게시는 군요.친구가 전경이니 이해 할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