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네트워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기술적인 조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조직이라는 이름의 유기적 구성에 냉소적 입니다. 언제든 맺고 끊을 수 있는 현대적인 네트워크 속에 둥둥 떠다니는 정보들은 대체로 역사적 구성이 철저히 배제된 파편으로 존재합니다. 서사 구조가 없는 파편들을 유기적인 관계가 형성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짜맞추다 보면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탈중심적 가치에 조응하는 텍스트를 생산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비선형적인 텍스르틀 네트워크에 흘려 보내고 열심히 유통시킵니다. 이러한 반복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선형적인 텍스트를 탑재한 후천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옮다고 믿는 정체성은 비유기적인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노마드 정신과 같아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노마드 속성은 언제나 변화해야 한다는 명제를 진보와 같은 개념으로 받아 들이게끔 합니다. 사람이나 정보나 스피드 있게 취하고 떠나야 하는 변화는 결코 진보적이라 볼 수 없습니다. 경향의 섭취에 능숙하고 서사의 느림에 무관심한 오늘날의 젊은이나 학생에게서 역사의식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사의 느림과 노동의 무던함에 가장 답답한 건 자본 입니다. 자본의 스피드한 흐름과 냉정한 관계 형성은 네트워크에 충실한 사람들을 매료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안락합니다. 고용은 없고 성장이 있는 시대가 이러한 인과관계를 설명합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고용은 사원에서 관리자로 관리자에서 경영자로 이어지는 계급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성장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프롤레타이아트 는 오늘날의 네트워크적 관계형성에 가장 뒤쳐지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노동자이면서 자본가가 되어야 하고 사람과 정보를 방랑해야 하는 시대에 NL 이며 PD 라는 과거도 실시간으로 네트워크안에서 파편화되지 않으면 아무도 접하지 않을 개념이 된 것 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생활속의 디테일 그리고 제거할 수 조차 없는 네트워크는 모더니즘이 없던 사회에 너무 빠른 포스트 모더니즘을 불러 온 판타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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