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가는 법치를 토대로 유지된다. 법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공권력이 엄격한 법규범으로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공권력이 엄격한 법규범에 의해 작동해야 하는 이유는 근대 국가를 이루는 국민이 폭력의 권리를 국가에 모두 위임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모든 폭력을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의 모든 자유, 헌법적 가치,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한 완전한 제도적 규범적 테두리를 벗어 나선 안된다. 또한 이러한 공권력이 집행 될 때는 시민이 권력이나 공권력의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할 때 비로서 정당해진다.

오늘날 한반도 남쪽의 인민들에게 가학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공권력은 과연 근대 국가의 그것이라 볼 수 있을까? 폭력을 위임하고 폭력을 행사할 뜻이 없는 시민들이 어떻게 폭력에 가담하게 되는지 그 답은 시민에게서가 아니라 공권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공권력이 사적 집단과 영합하여 시민의 생존과 권리를 불태워 버리는 현장을 목도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공권력은 이미 2009년 1월22일 용산에서 공권력이란 이름을 잃어 버렸다. 지금 광장과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공권력이라 함은 시민이 권위와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보통의 '청년집단', 피끓는 덩어리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도 마찬가지로 국가에 폭력을 위임해야 하며 무장을 해제 하고 시민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의 공권력은 한번도 시민사회와 함께 하지 못했다. 공권력은 법으로 시민을 통치하는 법치의 근본인 자유와 존엄을 지켜 본 적이 없다. 한국 사회의 공권력은 주권자인 시민의 결정 영역이 아닌 국가가 주권인 영역에서 결정되고 행동 되었다. 이것은 통치적 법치가 아니라 권력의 법치로서 그 보호 대상자는 주권자로서의 국가로 한정된다. 이 한계는 명백한 왜곡이다. 이는 근대 국가가 국민, 국토, 주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국토, 자본으로 형성되고 그 마땅한 주권적 지위를 국민이 아닌 자본과 같은 사적 범위에 포함 시키기 시작하면서 발생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될 수록 공권력은 그 권한을 부여한 시민으로 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게 되고 국가의 왜곡된 주권적 행사에 자신들의 의무와 책임을 이양함으로서 그 권한의 생존을 담보 받으려 한다. 이 담보 안에 국가의 유지를 위한 국민의 억압과 유린이 있다는 것은 주지적 사실이다. 이에 대해 시민은 주권적 물리력을 행사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위임된 폭력이 자유와 존엄을 보호 하지 않고 주권적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 그 위임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한반도 남쪽의 시민들이 행사하는 주권적 물리력은 정당하다 할 것이다.
2009/06/10 15:48 2009/06/10 15:48
DrunkenSTAR 이 작성.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나서 주셔서 너무 기뻤다. 게다가 진보성향의 기독교 단체와 불교계까지, 시민들은 한동안 다치지 않았다. 이제 7월5일이 되었다. 그간 두달 동안 노무현이 고향마을에서 막걸리 취기에 적어도 촛불에 있어서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파렴치 따위는 초월하게 되었다. 누구나 고향마을에서 불알친구들과 막걸리 한잔 하면 자신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변명할 수도 있고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두루 '방법'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의 파렴치를 잊고 말았지만, 대추리에서 수십명의 시민이 군과 경찰에 다굴 당하고 시내 한복판에서 농민 전용철, 홍덕표가 집회 도중 사망한 그때가 지금보다는 민주주의가 더 있었다고 추억한다. 노무현은 UFO적인 인간이다. 미확인된 이념으로 작동하는 인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현실이 아니다. 최소한 우리가 그를 추억하는 한 말이다. 민주주의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조금 다른 것은 지금 거리의 무브먼트가 직접적인 사적이익의 사안인지, 조금만 비켜서면 충분히 무관심해도 될 사안인지의 차이다.

정권이 시위의 불법성에 대처하는 폭력적 자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때는 군과 철조망도 동원되었고 두명이나 비명횡사했다. 어청수가 지금 사용하는 물대포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맥락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사회적 인간의 폭발적 의지가 동일했을 때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몇이나 될까? 그건 그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리의 크기에도 관계가 있다. 집회는 언어의 근원과도 일치한다. 의지는 언어를 생산하고 언어는 인간들끼리 모여 대화를 통해 작동한다. 모이지 않는 이상 의지도 언어도 집회도 아무것도 일어 나지 않는다. 10만명? 20만명? 이 정도 인간이 모여 집회를 할만한 공공 장소가 서울에는 없다. 조중동이나 이명박 일당이 말하는 합법적 집회란 인도에서나 가능하다. 선거만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모두 완성될 수는 없다. 뽑았으니 믿으라는 교조적인 담화는 소망교회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의지는 이명박이 말은 할 수 있어도 절대 실천할 수 없는 소통에 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모여서 대면해야 하는데 도대체 서울엔 이 강력한 인간의지가 모일 장소가 없다. 그러하니 어떠한 철학도 필요치 않은 무리들은 이 부분만 물고 늘어지며 불법, 위법만을 강조하면 된다. 철학이 없으니 불법말고 다른 논리를 만들면 더 추해진다.

미국산 쇠고기, 이명박 퇴진과 함께 폭력 비폭력은 거리의 절대 화두 중 하나다. 폭력과 비폭력은 촛불을 든 시민들만의 화두는 아니다. 저들, 즉 권력을 비호하는 일당에게도 그런 비슷한 화두가 있다. 철학은 없고 더러운 기름으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불법에 대처하는 그들의 기계적인 폭력말이다. 거리에서 공권력은 권력을 지키는 경찰로 대리된다. 이 나라에 공권력이란 장애인과 여성, 노인은 카메라 없는 곳에서 패라고 명령하는 직업경찰과 멋도 모르고 인간들을 족치는 2년짜리 비정규직 전투경찰더미가 전부다. 솔직히 그 거리에서 나쁜놈은 몇명 밖에 안된다고 구분하는 시민을 보면 성자를 보는 듯 하다. 나는 그만큼 넉넉한 오지랖을 가지지 못한 것 일까. 촛불을 든 시민 중에도 나쁜놈과 좋은놈이 있다고 구분이 가능할까. 어청수는 가능하다고 한다. 물대포에 형광물질을 넣어 뿌리면 물대포 맞은 놈은 나쁜놈이라고 구분 가능하다고 한다. 촛불소녀가 웃는다. 저는 나쁜년인데요.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민과 방패를 든 경찰로 나뉜다. 이건 의지와 명령의 차이다. 육체를 타고난 인간은 어차피 그 자체가 폭력이다. 우리가 나눠야 하는 것은 폭력과 비폭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어떤 폭력이냐는 구별이 가능해진다. 여성을 넘어 뜨려 발로 차는 인간이 있다. 그냥 쳐다 보는 인간과 발로 차는 인간의 면상을 후려치는 인간과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일까? 좁은 도시에 10만, 20만이 더 많은 사적이익을 도모할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모일 만큼의 언어가 작동하고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인간 의지가 있다. 이것을 불법이라는 집시법 위에 두고 이 인간들을 토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정자들이 그 민주적 의지를 제단할 수 있을까? 폭력이 구별 가능해지면 어떤 폭력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이 역사이며 역사가 오늘을 비춘다. 명령이 의지를 이겨 본 적이 없다.

이제 오늘 국민이 승리 했다고 선언하자고 한다. 900여명이 강제연행 되었고 10명이 구속됐다. 미국산 쇠고기는 유통되고 있고 조중동은 여전히 설레발치고 있다. 이명박은 뒤에 숨어 대폭 개각할 듯 하더니 소폭 개각하고 지들끼리 재신임 중이다. 거지 같은 인권은 동물적으로 변질되고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과 통신은 각종 탄압의 전조를 울리고 있다. 게다가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대중들을 위해 공약한 이명박의 대표적인 공약인 747 은 미국소 주저 앉듯 앞대가리 부터 4로 시작할 조짐이다. 우리는 무엇을 승리한 것일까? 신부님, 마음속에서 그렇게 가다듬고 외쳐야 하는 건가요? 고해성사 하듯요? 우리는 아무것도 승리한 것이 없다. 앞으로 시민들이 계속 촛불을 들 것이니 조바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나마 주최자인양 하던 국민대책회의도 뿔뿔이 흩어 졌다. 어느 누구도 음향기기나 무대차를 촛불집회에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의지가 있다. 시민들이 더 다치지 않게 승리를 선언해주시는 32인의 지식인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감사하다. 하지만, 승리했다고 월드컵 그날 처럼 시청광장에서 미쳐 날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에도 며칠 촛불집회 하다가 물대포 맞고 방패에 찍혀 백병원 들락 거리다가 어느날 승리를 선언해 버리고 말 것인가? 아직 우리는 승리하지 않았고 의지가 남아 있다. 이런 거지 같은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 따위를 할 것이 분명한 미래지향이 이 거리에서 목도 되고 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승리를 선언하는 고해성사에 반대한다.
2008/07/05 03:08 2008/07/05 03:08
DrunkenSTAR 이 작성.

정부의 몇몇 장관들이 대국민 담화라는 협박을 발표 했다. 이 협박은 거리에서 경찰의 확성기를 통해 듣던 확성녀의 헛소리와 다른 점이 없다. 맥락은 아주 간단하다. 오늘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다' 고 알려 주기 위해 어제 확성녀는 '당신들 미친 것 아니냐' 고 떠들어 댄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본은 이랬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전경버스를 파손하는 행위는 불법' 이라고, 그러더니 대본 없이 이런다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돌아 보라고' 반성하란 얘긴데 매일매일 좆 잡고 반성하다보니 순정 어린 마음을 주체 못하고 거리에 나왔다. 구호라도 외치지 않고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그것도 못하느냐며 반성하다가 돌아 버릴 것 같아서 그런다. 이제 새로운 대본이 나왔다. 국민이 아니라고 선포할 것이니 미친 집단으로 몰아가라는 대본이 그들끼리 존경해 마지 않는 청와대에서 내려 온 것이다.

전경버스를 끌어 내는 밧줄을 잡고 있으면 앞뒤에 선 건장한 시민들에 부대껴 두 다리가 공중에 떴다가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 그렇다, 저 버스는 내가 그동안 꼬박꼬박 낸 소득세, 주민세, 방위세, 자동차세 등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내 갈 길을 막는 저 버스는 내가 파괴할 권리가 있다. 좆 잡고 반성해 보았다. 저 버스는 온갖 세금을 탈루하고도 불구속 입건 조차 되지 않는 이건희 따위의 원조 강부자 계급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건희가 저 버스를 파괴하려고 했을 때 그게 불법인 것이고, 그게 진정한 폭력이다. 우리에게 비폭력은 맞아 주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아야 하는 것이 마치 촛불집회의 존재 이유처럼 된 논리는 거부 되어야 한다. '이 개새끼야' 라며 방패를 아스팔트 바닥에 갈고 오는 경찰 앞에 서 보라, 두팔 벌려 우리 아들이고 형제고 동생들 입니다 며 끌어 안겠다고? 미친 짓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산 하이바와 방패를 내리고 맨 주먹으로 맞짱 뜨고 싶은 생각 말고 없다.

비폭력은 저항 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한다. 시위대에 끌려 나온 전경을 폭행하지 않고 돌려 보내는 것, 길바닥에 쓰러진 여성이나 노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을 군화발로 짖이기지 않는 것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패를 갈며 '개새끼야' 라며 덤벼드는 경찰이 있다면 난 눈에 보이는 뭐라도 들고 싸울 수 밖에 없다. 내가 한 일은 내 양심의 울림에 따라 촛불 든 것 밖에 없으니 당연히 정당방위다. 경찰도 양심의 소리에 따라 방패로 시민의 정수리를 깐 것일까? 그러니까 우린 더 이상 맞아 줄 수가 없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짓밟았다고? 보편적인 인간은 누가 명령한다고 해서 여성을 짖이기고 아이에게 소화기를 뿌리지 않으며 노인을 질질 끌고가 방패날로 내리치진 않는다.

광우병 쇠고기 따위가 이제 이 집회의 목적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 버스를 넘어야 이명박을 만나 대통령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온갖 악질적 행위에 대해 따질 것 아닌가. 이 거리의 상황은 광우병 쇠고기 고시 철폐를 넘어 섰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는 것도 그들에게 지나치게 명예스럽다. 이명박 정권은 폭력 집단이지 독재 집단이 아니다. 이 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폭력 집단에게 그냥 맞고 버티는 것이 국민의 의무 인 양 한가한 토론을 하는 것이다. 요즘 이 토론은 패배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정권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겠다는 둥, 저 윗분들이 비웃고 있다는 둥, 결국 우리는 해도 안된다며 절대 해서는 안되는 반성모드로 접어 든다. 이 반성모드의 끝에는 현대판 노예의 삶 만이 기다린다. 게다가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폭력 집단을 어디다가 신고도 고소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능이 중지된 쇗덩어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남은 법은 헌법 1조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폭력 집단은 국민도 국민 나름이라고 선언했다. 그들이 국민이 아니라고 한 우리는 그럼 무엇일까? 갑자기 정체성이 확 사라져 버리면서 두려움에 떨리는가.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가 인간이 아닌 그들과 인간인 우리를 구별해 주었다. 촛불집회를 더 이상 촛불집회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 또한 바라는 바다. 이제 집회는 때려 치우자. 집회를 빙자하여 이 폭력 집단에게 맞아 주고 감금되는 일은 무기력한 일이다. 이제 촛불집회를 항쟁으로 부르자. 유모차도 그동안 고생하셨다. 촛불소녀도 그동안 고마웠다. 이제 항쟁을 할 강철 대오가 상상력이고 감수성이다. 더 이상 이명박 정권을 간지럽혀 이 거리의 폭력과 끝장난 권력을 끝낼 수가 없다.

2008/06/30 00:23 2008/06/30 00:23
DrunkenSTAR 이 작성.

폭력

2007/04/23 01:02 / 생각
폭력이 일어나고 폭력의 주체를 감금하고 나면 세상은 망각하기 시작한다. 일시적이던, 영원하던 다시는 폭력이 일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안도가 감금에서 나오는 이유는 감금을 행위하는 권력의 존재가 공공 안녕과 정의 때문이라 믿기 때문이다. 적어도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사건보다는 그렇다고 믿는다. 세상의 망각이란 개개인의 망각이 합해져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폭력으로 부터 도피하는 세상의 망각은 사회적 권력에서 나온다. 폭력을 감금한 공권력 뿐만 아니라, 폭력이라는 언어를 희석시키는 언론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망각의 이유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이유가 종종 슬픔을 치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광기가 감금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 폭력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광기는 망각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또한 폭력을 감금하고 광기를 생산하는 주체가 동일할 경우, 즉 사회적 광기에 대한 책임 또한 권력이나 언론에 있을 때 사회는 절대 폭력으로 부터 안도할 수 없다. 권력과 언론이 이러한 책임에서 손쉽게 벗어 날 수 있는 이유는 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불행이 잠재적 폭력은 국지적이지 않다. 전체적이며, 사회는 발가벗게 노출되어 있고, 모두를 천천히 중독시킨다. 따라서 누구라도 조건만 맞는다면 능력 이상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무턱대고 안도할 수 없는 일이다. 언론을 그대로 읽고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할 경우, 중독은 한꺼번에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
2007/04/23 01:02 2007/04/23 01:02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