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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5 매미가 다 죽었다 by DrunkenSTAR

매미가 다 죽었다

2006/09/05 18:01 / 생활

이런 찬란한 하늘을 견디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미쳐 풀지 못한 수학문제를 남기고 여름이 갔다. 슬픈 소설을 읽고 있던 한 소녀는 이제 슬픔을 잊은 것일까? 한참을 울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잠을 잘 잤다. 책을 덮고 수학문제를 잊고 소녀를 잊고... 일이 많은게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는 약속이 너무 많아 책을 덮고 지낸지 꽤 오래됐다. 그러다보니 생각할 시간이 줄고 고민거리가 없어 진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지식에 관한 호기심을 거두게 되면 자연히 이성을 잃고 감정을 쌓게 된다. 계절이 바꾸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스쳐가는 것에 극진한 사무침이 생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잠을 잘 자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일까? 따위의 고민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잘 살아서가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오직 남과의 비교 우위로서 쓰임새의 척도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잘 살아야지, 치열하게 살아야지, 따위를 다짐하며 그렇게 살아 보이는 것이 고작 돈 잘 버는 방법이고 돈 잘 버는 방법을 아는 사람의 편에서 수다를 들어 주는 것으로 귀결된다. 가을을 견디는 사람들의 주제가 온통 소비의 비교우위이다 보니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대체로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제도의 피해자라는 지난한 담론에 빠지는 개인들의 주제는 알몸으로 역사관의 부재를 드러낸다. 역사의 일반화라든가, 역사의 교훈 같은 진부한 계몽은 제껴 두더라도 역사가 행하는 진보의 사명이 제도의 구조화가 아니라 개인의 사명으로 부터 진행되었다는 가치관 정도는 있어줘야 한다. 역시, 먹물들의 계몽적 사명인가?

계몽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진보주의자들의 누에는 한철 울고 마는 매미의 삶에서 벗어 나야 한다. 역사에게는 계몽이 희망이다. 역사가 배려하는 것은 심각한 사명이 아니라, 사명을 가진 자의 계몽에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계몽하겠는가? 는 고민은 진보주의자들의 스킬을 요구하게 되고 진보주의자들의 진보는 스킬의 업그레이드에 집착되어 있다. 더 편집적이어야 한다. 진보는 천천히 가다가 결정적 순간을 맞게 되고 그때 필요한 것이 스킬이다. 매미는 다 죽었는데 무슨 소린가 싶다. 글도 그치고 생각도 그치고... 다시 독서가 필요하거나, 끼니를 거르지 않거나... 취미와 숭고의 차이이다.

2006/09/05 18:01 2006/09/05 18:01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