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탈당 했다. 자주파를 저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너 나은 진보와 더 나은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서다. 자주파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며 섣부른 처방을 내리는 것도 삼가한다. 그들의 양심적 신념은 높이 살만하다. 종북으로 인해 친북이 어떤 해악적 정서가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사망 직전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양심적 사람들의 양심을 강제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실을 애써 외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주파의 그러한 양심과 진보적 신념도 이해할만 하다. 친북이 그저 조선노동당에 남한의 사정을 보고하는 2중대인양 상대적으로 부각되어 단편적인 부분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그저 조선일보나 하는 시대착오적 반공주의로만 치부될 수 있다. 자주파의 그것은 분단을 방점으로 우리 사회의 거대한 모순에 대한 숭고한 저항이기도 하다. 어쨌든 자주파의 그 방점을 변명하고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보가 하나의 틀로만 있기에는 너무 다양하다는 것을 시대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라고 본다. 사실 탈당을 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즉시 처리되었다는 메시지를 당으로 부터 받은 것도 그렇지만, 황급히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탈당한 동지들의 전화에도, 한때 같은 당원이었던 자주파의 서슬 푸른 패권적 발언에도 가슴이 시렸다. 지금 이 지점에서 경계해야 할 센치함에 어쩔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한때 동지였고 서로의 비빌 언덕이었고 그것을 갑작스럽게 부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저주하고 혹자는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라고도 하지만 그들을 진보의 해약적 표본으로 삼는 여론에는 결코 반대한다. 그들의 사상을 이러한 정치적 이슈로 인해 보잘것 없는 것으로 폄하하고 침해하는 것은 미래의 진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진보는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것. 이제 새로운 진보 신당에서 새로운 감수성으로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겠지만,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다. 어느 신문기사처럼 발가 벗겨진 자주파와 평등파가 걸어야 될 시련이 온전히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시대가 이따위고 세대가 단절되었다고 해도 진보는 나아가는 것, 어디로든지가 아니라 정녕 사람 하나를 보살피기 위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것, 다만 자주파의 변하지 않는 오랜 부조리에 대한 투쟁보다는 계급과 민중적 저항으로 나아가려는 것, 정치적 집권을 통한 인간다운 체제적 변화를 원하는 것, 자주파의 그 사상적 완고함 만큼이나 또다른 시대적 진보로 나아가야 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탈당과 함께 새로운 진보 정당으로 보내는 엄연한 지지이며 희망이다.

2008/02/06 02:55 2008/02/06 02:55
DrunkenSTAR 이 작성.

김창현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의 '수구꼴통을 위한 분열선동' 이란 발언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고 경황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자주파의 거대한 패권의식의 실체와 전속력으로 부딛쳐 산산이 조각난 몸둥아리를 추스리는 허둥지둥이랄까. 민중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총론을 빌미삼아 반민중적 수사와 각론이 난잡성을 넘는 이 불안하고 불쾌한 시대에 그나마 민주노동당이 남아 있어 생기는 그 어떤 희망이 김창현씨를 통해 조립 불가능한 파편으로 흩어져 버렸다. 게다가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선대본부장까지 맡았던 김창현씨의 인식 속에는 더 이상 진보의 근원적 성찰이나 자기 반성 따위는 찾아 볼 길 없고 더욱이 민주노동당이 이미 자주파, 다수파의 그들만의 권력리그가 되어 있는 실체적 진실을 쏟아 내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고 실망스럽다.

지역당의 위원장 선거에서 보인 관료적인 당규의 적용 논리도 참아 줄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거의 승자도 패자도 모두 민노당 당원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개 평당원의 소심한 인간정리가 얼마나 이용하기 좋은 표심이었으며 민중이란 이름으로 기득권 수성을 획책하는 보수정당의 애용품으로서의 알량한 당심이었는지 깨닫고 나니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분단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거대한 부조리로 생각했었지만, 김창현씨의 논리대로라면 종북주의는 친북주의이며 친북주의자가 아니면 반북주의자로서 통일의 과업을 통한 평화 지향이 아닌 분단의 고착화를 선동하는 친미 반민족주의자가 된다. 북한과 남한의 관계를 국가대 국가로 규정함이 반북이 아닐 진데 종북이 아니면 통일이 안되는 논리야 말로 해괴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도리어 이러한 주장이 통일의 진정성에서 나왔다기 보다 종북 인식은 오래된 민주노동당의 관행이었으니 이번 대선의 패배와는 무관하다는 책임의식을 통해 여전히 자주파의 종북주의야 말로 패권 수성에만 동원되어 작동하는 진정성이라 생각된다. 어디에도 71만표라는 눈 씻고도 해괴한 결과를 막막한 심정으로 대하는 평당원의 그것보다 못한 치졸한 세력 다툼과 함께 반협박을 일삼으니 김창현씨로 인해 이 분열의 당위성이 100퍼센트 충전되는 역설이 가능해져 버렸다.

민중승리, 민중믿음 같은 민주노동당의 추상적 구호가 보수정당의 상투적 명분과 일치하고 있는 이러한 오만한 권력 투쟁의 결과가 분열적 자성이 아니라 통합적 대동단결이어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부침개처럼 뭉게고 마는 단결의 조장은 마치 개발독재식 뭉치면 산다의 망령을 보는 듯 하다. 차라리 분열이라 부르는 분열에서 찾는 희망이 휠씬 창조적이다. 이것을 분열선동이라 불린다면 그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분열된 신진보의 모임이 수구꼴통들과 부르조아적 야합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악랄한 저주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들었을 터, 따라서 그 용감무쌍함은 참으로 고약하다. 이러한 고약스러움은 지금 자신들이 민중의 희망을 빌미삼아 무슨 짓을 해놓았는지, 지난 대선의 참혹스러운 결과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지점까지 오게 하였다. 민주노동당이라는 통에 사심 없는 노동, 공평한 권리, 자본으로 부터의 해방, 숭고한 인권등과 같은 진보의 사표가 세력화, 내부 권력화를 위한 패션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면 도대체 왜 나와 같은 평당원이 불필요한 파벌 매카니즘에 허망함을 느껴야 하며, 보편적인 진보의 가치는 그대로인데 왜 그들의 권력과 기득권으로 더럽힌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것도 패션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자주파의 패션은 싫다. 인민과 민중의 눈높이에 있던 민주노동당의 시선이 종북의 틀에서 북한의 관심과 눈치를 살핀 것이 자주파의 미시적 자주성인지 물어야 할 판이다. 민주노동당을 넘는 민주노동당에 진보의 가치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이러한 종북주의의 폐기 때문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고약함이다.

2008/01/30 20:25 2008/01/30 20:25
DrunkenSTAR 이 작성.

165 대 165, 민주노동당 한 지역구의 국회의원 경선 후보 선거 결과다. 13% 대의 정당 지지율을 얻고 있으면서도 겨우 3% 지지로 마감한 민노당의 이번 대선 결과 만큼이나 신묘한 숫자다. 초등학교 반장 투표에서도 저런 숫자는 무승부, 재투표를 의미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재선거를 하지 않고 '규정에 의거하여' 당원 번호가 빠른 후보를 당선시켰다. 그나마 빠른 민주주의 의사결정 체제 중 그나마 빠르다는 쪽수제도의 동률 처리 방안을 겨루기판의 체중 달기로 마무리한 셈이다. 아무도 군소리 하지 않고 재선거를 해도 무당 칼에 쩍 갈라진 숫자에 혀를 내두를 참인데 당원 번호 순이라는 규정집을 꺼낸다. 민주노동당은 그만큼 관료적인데다가 한나라당도 하는 일을 민주노동당도 똑같이 하고 당규정을 내세워 간단히 제압하려 한다는 점이 놀랍다.

종북주의란 무엇일까? 즉 북한과 정서적 교류를 너무 심하게 해서 명백히 비판 받아야 할 북한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이 종북주의 때문이란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어떤 행동이란 핵실험 같은 것을 말한다. 민노당 내에서의 패권주의란 무엇일까? 다수파인 자주파는 이번에도 권영길을 대선후보로 내었다. 당의 헤게모니는 오래전부터 자주파가 독점하고 있었고 이러한 패권적 경향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것이 민노당의 대선패배에 대한 논란의 핵심이고 쇄신의 방향에 큰 담론의 틀이다. 민노당의 미래를 염려하는 평당원의 입장에서 이렇게 민중과 철저히 괴리된 담론의 틀로 사회주의경제체제의 구현이나 이를 위한 집권을 이룰 수 있을 지, 어둡기만 하다.

지독한 일이다. 민중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해도 권영길을 더 이상 민노당의 얼굴로 보지 않는데다가 극단적으로 민노당은 지지하면서도 권영길은 지지 하지 않는 올드패션의 진부함을 논하는데도 당은 해석 불가능한 언어로만 정치를 하려고만 한다. 이미지 정치를 비난할 줄만 알았지 정작 이미지와 정갈한 구호로 마음을 쓸어 담는 민중들의 쓸어 담지는 못했다. 결국 패션화를 경멸만 하다가 문국현에게도 뒤진 지지율에 당도하고도 내부 헤게모니적 노선 투쟁에 의례 클래식컬한 언어를 동원하여 그것들을 유희하는데 시간가는 줄 모른다. 최소한 세상을 바꿀 구호 정도는 회자 되어야 진보 정당의 진보화가 계몽되었을 터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도 바뀔 수 없다는 원초적 진보에 대해 먼저 알아 버린 것은 민노당이 아니라 민중이었고 이를 반성하는 쇄신의 틀이 이른바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에 기댄 정파의 혁신이라는 것이 민노당의 생각인 것 같다.

최근에 이와 같은 '견 풀뜯어 먹는 반성의 소리' 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민중은 사람을 바꿔 정치와 세상을 바꾸겠다며 삶을 송두리채 시장에 내 놓으라는 이명박을 찍는데 스스럼이 없는데 자주가 먼저인지, 평등이 먼저인지 논의 한다는게 견 풀뜯는 소리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물며 자주며 평등을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못대고 치더라도 자주와 평등이 풀뜯는 소리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로 나와야 하지 않았겠는가마는 이제와서 종북주의와 당내 패권주의가 반성의 틀에 견주어지는 마술적 자세와 언어 도단은 민중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급기야 분당을 거론, 아니 견 풀뜯는 소리는 더 이상 못 듣겠다며 대놓고 깨지자는 분위기다. 차라리 반성을 못할 부류들이라면 깨지고 깨지는 것이 맞겠다. 한나라당이나 통합신당이 하는 구차스러운 협작 뿐만 아니라 도무지 알 수 없는 언어와 조직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치졸성을 들어낸 마당에 다시 민중을 얘기하고 진보를 선전할 총선의 상황이 벌써부터 쪽팔려 온다. 도대체 민중을 걱정하던 당이 맞던가.

165대 165, 그리고 당원 번호 순이라는 이 당췌 당원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자세가 안되어 있는 당의 규정일랑 한나라당에 헌납하길 바란다. 자주파는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연구하며 당과 당내의 정치를 위한 당을 만들어 북풍에 기대어 선거를 치루던 구호를 선전하던 그렇게 하는 것이 맞겠다. 민중적 언어와 계몽에 힘쓰지 않고 자신들의 민주화 투쟁 경력과 지식을 기득권 삼아 '잘난체 하는 인사'는 현재의 민주노동당에 남겨 두길 바란다. 오래도록 민주주의를 연구하도록.

이 감동 없는 한해를 마감하며, 내년엔 민주노동당을 넘는 민주노동당을 기대한다.

2007/12/31 23:07 2007/12/31 23:07
DrunkenSTAR 이 작성.

권영길 지지 2

2007/12/18 18:24 / 생각
권영길은 너무 아웃사이더라고 얘기한다. 민주노동당은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얘기한다. 권영길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라고 얘기한다.

극우세력과 신자유주의를 개혁이라고 호도하는 세력들이 주도하는 선거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을까. 자신들이 개혁 성향이라고 하는 사람도 뜯어 보면 짝퉁 진보를 개혁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 뿐이다. 노무현과 개혁세력이 만든 우와우의 세계. 정치담론은 궁색하기 마련이다. 민주노동당이 이상주의라고? 얼마나 민주주의적이지 않으면 좌와 우가 논쟁하는 사회를 그려내지 못하는 것일까.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표는 사표라고? 당신 영혼이 먼저 죽은 건 아닐까? 마치 자기는 개혁 성향인데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 사표가 될 것만 같은 군중증후군에 시달린다면 잘 생각해보라 군중속에서 당신은 당신인지? 당신은 군중일 뿐이다.

민주노동당 지지를 재확인 하며..
2007/12/18 18:24 2007/12/18 18:24
DrunkenSTAR 이 작성.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이미 반노동, 반민중적인 사고로 신자유주의 노선에 동참할 사람이었다. 일찍히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노조 분할과 갈등을 통해 민주노총의 농촌마인드를 비난했던 한국노총이었다. 노사정 합의에 있어서도 사측과 정부의 안을 수용하고 민주노총을 이른바 따 시킨 것도 이용득 위원장의 정치적 발로 였다는 것도 알 사람은 다 안다.
그가 이명박과 호기 좋게 손을 잡았다고 해서 놀라울 일도 아니다. 두 사람 다 정책이 관점을 바꾼다는 짧고 얄팍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들의 특징은 총론은 거창한데 각론은 형편 없는 열거를 주장하거나 총론을 목적하지 않는 각론을 늘어 놓고 선전하기 바쁜 부류들이다. 피지배자는 대게가 정책과 시스템을 통해 관점이 바뀐다. 하지만 지배자나 지도자는 관점을 통해 정책을 수립하고 관점을 현실화 시킨다. 이명박과 이용득이 악랄한 이유는 지도자이면서 절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관점과 교양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도자인척 한다는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들을 전폭적으로 지지 하거나 최소한 지지할 곳이 없어 남들이 지지 한다며 안락한 비판적 지지의 대열에 서거나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는 민중이 대다수라는 현실이다.

이것은 현실이다. 공포스러울만치 처절한 현실이다. 검찰이 BBK 는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여론조사 1위 후보는 기소하지 못한다는 정치석 해석을 한 것 뿐이라며 신당은 결국 현직 검사의 탄핵소추를 감행했다. 어쨌던 검찰에는 일고의 믿음이나 인간적 측은함을 보낼 생각이 없다. 그들의 알량한 조직적 자부심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미친 해로움은 회복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5년에 한번씩 바뀌는 대통령이야 죽도록 해먹지 못하는 것이지만 검찰 조직의 해악은 작금의 차원을 넘어 선다. 이 해악의 요지가 현실을 파탄 낸 세력의 주둥아리로 부터 나왔다고 해도 여론조사 1위인 유력한 대선 후보를 기소할 수 없어 수사를 엉터리로 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검찰의 정치적 해석도 여론조사 1위인 후보에서 나왔고, 한국노총의 자기 계급의 정체성 부정도 관점의 존경어린 동질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력 후보에 대한 반동적 줄서기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맥락이 존재한다. 이러한 맥락은 총론은 같은데 각론이 다른 집단간에 낮은 단위로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어쨌든 현실이다. 온갖 비리와 도덕적 파탄을 동원해도 부동의 1위 후보를 만든 것도 민중이며 정체성 부정이 오늘날 참여정부의 가장 치졸한 실패라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급적 연대를 구축하여 스스로 일어서길 냉소하고 남의 부스러기를 주어 담는 거지근성에 복무하기로 한 것도 민중이다.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실패한 민주노동당의 어려움은 반동적 민중과 진보라고 주장하는 반진보적 개혁세력으로 부터 잉태되었다. 주장하건데, 잃어 버린 10년은 잃어 버린 경제가 아니라 잃어 버린 진보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노무현, 정동영으로 이어지는 반진보세력은 개혁이란 비슷한 레토릭으로 현실 이반질을 해대며 2002년의 단일화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지근성과 비리에 내성된 민중을 만들어 낸 것도 10년간 반진보세력이면서 범진보인양 허튼 정치적 선전을 한 결과다. 10년간 부정된 진보로 인해 난치정체병에 시달린 민중들이 병에서 벗어나 안락함으로 복귀하고 싶은 심정은 당연하다. 차라리 경제라도 살려라 떡부스러기라도 커지면 좀 나아지지 않겠냐. 중산층도 기대할 수 없는 노동자와 농민과 시장상인들이 이명박을 찍는 이 단순 명쾌한 이유를 밥벌이가 숭고한 대게의 사람들끼리 무턱대고 탓할 수 있나. 하지만,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향한 이합집산에 정체성 따위는 없다고 해서 부자건 가난하건 보수건 진보건 간에 권력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각론에 매달릴 때, 사회가 더 좋아지려는 총론은 한낫 구호로 전락하고 만다. 민중을 위한 총론을 얻을 수 없는 사회는 조금도 좋아지거나 진보하지 않는다. 결국 자기 호주머니 타령만 하다가 사회적 시스템은 기득권의 관점과 논리로만 지배당할 것이 불 보듯 하다. 자기 호주머니 걱정만 하는데도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검찰이 1위 후보라서 기소하지 못한 이유와 한국노총이 1위 후보를 지지하는 개 풀 뜯어 먹는 소릴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다 우리가 저지른 일이다. 고통도 우리가 받아야 하고 아이들에게 물려 주며 알아 들을 수 없는 상황을 총론과 각론이 들어 맞지 않게 변명해야 하는 것도 우리다. 두렵지 않은가? 이런 현실이 공포가 아니면 무엇이 공포인가?

2007/12/11 14:42 2007/12/11 14:42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