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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2 무지개를 사랑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by DrunkenSTAR (2)

아내와 종종 태어날 아기의 교육에 대해 논쟁 할 때가 있다. 우리의 논쟁 중에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교육을 문제로 접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교육은 교육 그대로 지켜져야 할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은 무너지고 교육 제도의 형식과 제도의 도입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교육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제도의 문제이면서 제도의 큰 축인 대학과 입시를 위해 학생을 둔 우리나라 대게의 가정이 견뎌야 하는 사교육비 문제가 바로 포커스이다.

아내와 나의 논쟁도 TV토론의 여러 대선 주자들처럼 포커스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아내는 이명박을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이명박이나 현실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대게의 학부모와 같은 각론에 수긍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아내를 탓할 수는 없다. 아내의 생각은 이를테면 한국 사회, 적어도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에서 만큼은 암묵적인 합의 사항이기 때문이다. 요컨데, 사교육비 많이 드는 몹쓸 세상이긴 하지만 좋은 대학, 덜 좋은 대학으로 나눠져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대학은 서열화 되어 있고 공교육만 제대로 개혁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책적으로 얘기하면 입시 제도는 폐지하되 대학 경쟁력은 키워야 된다는 말과 같다.

입시 제도 폐지, 대학 평준화 하면 학부모들이 지레 겁을 먹나 보다. 아직 학부모도 아닌 아내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여기엔 몇가지 전통적인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입시 제도 없이 어떻게 대학에 입학하냐는 것과 공부 잘 할 것만 같은 내 아이를 위한 세계적인 대학의 막연한 필요성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적이며 일류인 대학 몇 개쯤 보유한 나라에 살고 싶은 약간의 애국심과 자긍심 따위도 양념되면 제도적 문제의 촛점인 사교육비에 있어서는 못난 부모 만나 미안해 로 덮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에 관한 패러다임 안에서 학부모의 고민은 대게가 교육 제도에 학생들을 어떻게 적용하고 적응시키느냐는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 주자들이 TV 에 나와 관념적 주장을 늘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정책의 관점이 과연 교육을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제도를 효율적으로 하자는 것인지 따져봐야 할 역할은 오로지 정책 수용자에게 있다.

난 아직은 부모가 아니지만, 대게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남들처럼 제도에 적응하고 남보다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확실히 이겨주길 바란다. 이러한 일련의 제도 적응력을 12년동안 치루고 남들이 일류라고 하는 대학에 입학하면 비로소 교육은 끝난다고 생각한다. 사실 학교가 없고 가르칠 어른이 없어 애초에 배움의 기회가 없다면 그보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어 전문고, 자립형 사립고가 없다고 해서 희망이 없을까. 교육 제도에 더 잘 적응하는 아이를 자랑하기 위한 대학 서열과 학벌 중심적 사회를 지켜야 희망이 있는 사회일까. 나는 과연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예비 부모일까.

고백하건데, 이제 5개월된 아이가 다운증후군일지도 모른다는 소견을 듣고 아내는 무척 놀랐다. 확률적인 것이라 괜찮다며 아내를 위로 했지만 그게 어디 생때같지 않은 아이의 엄마를 위로할 수 있는 소리인가. 애썼지만 과연 다운증후군인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기를 수 있을까,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내의 두려움은 얼마나 클까. 아이 앞에서는 나도 보편적 염려와 갈등을 하기 마련이고 애초에 아이를 앞세워 용기를 부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가는 시간을 깨닫고 말았다. 생때같은 아이, 혹은 생때같지 않은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는 나름의 염려가 있다. 어떤 아이 건 간에, 아이를 가진 부모의 계급이나 정체성에 관계 없이 아이는 교육을 받을 제도적 권리가 있어야 한다. 부모의 염려는 그 권리 때문이며,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그 권리를 모두에게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협오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에 적응하기 위해 죽어라고 경쟁만 하면 될까. 부모는 아이를 교육 제도에 적응시키기 위해 죽어라고 벌어오면 될까. 바꾸면 안되는 것일까?

모든 아이의 출생이 축복인 것 처럼 아이들의 교육 또한 축복된 과정이어야 한다. 나는 아이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교육 제도를 모두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아이의 이 특별한 시간을 축복되게 하기 보다는 견디라고 고문하고 견디지 못했으니 낙오자라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권리는 있어도 어른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해로운 교육 제도를 견뎌야 하는 의무는 없는 것이다. 해본적도 없지만, 나는 아이가 공부를 잘 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성적을 바라며 교육을 시킬 생각도 없다. 내 아이를 특별한 학교에 보내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 내고 특별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가 특별한 교육 제도에 적응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을 낼 시간이라면 차라리 널려 있는 자연을 보고 느끼는 법, 산책하는 법, 친구들과 노는 법, 남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법, 반성하는 법 처럼 내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그것을 도우는 보통의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이 나라의 알량한 대선 주자들과 자식들 염려와 걱정 뿐인 부모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아이가 무지개를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내도 동의해 줄까.

2007/12/12 18:08 2007/12/12 18:08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