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신자유주의, 반민주주의 정권을 지탱하는 두 계급이다. 부자는 경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경찰은 권력을 가진 부자나 또는 그냥 부자를 성심 성의껏 지킨다. 부자와 권력을 겨냥한 비판은 경찰과 부자가 아닌 계급에서 나오고 경찰은 부자를 위해 기꺼이 비판과 맞선다. 서민은, 엄밀히 말하면 돈없고 빽없는 서민은 자신들을 지켜주는 경찰을 때론 존경할 때도 있지만, 부자는 자신들을 아무리 지켜줘도 경찰을 존경하는 법이 없다. 지팡이와 끄나불의 차이다. 게다가 경찰은 부자가 되지 못하고 부자는 경찰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정에 밝은 어떤 경찰은 경찰이면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모색한다. 경찰이 부자가 되려면 로또에 당첨되거나 권력을 핥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열심히 헐떡 거린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반민주주의로 전속력을 내는 이유는 경찰이 경찰이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부자가 되려는 노력을 경주하기 때문에 가속화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부자인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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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무게를 들고 내리는 역도가 그렇게 몰입성이 강한지 어제야 알았다. 사재혁이 금메달, 기뻐해줄 일이다. 그의 금메달에 내 감정을 함부로 이입시켜 기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대게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우리나라 사람, 한민족, 대한민국 이런 전통적 멘탈리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뻐해줄 수 있다면 기뻐해줄 수 있다.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사족을 달 이유도 없고 그저 평범한 사람의 그것처럼 잘했다고 기뻐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영광과 기쁨을 함부로 나누지 않고 오로지 사재혁에게 돌려 주는 일도 잊지 않고.
개인의 영광과 기쁨을 전통적이거나 체제적 멘탈리티에 묶어 함부로 나누려는 시도는 개인의 독립적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언론매체와 국가로 부터 나온다. 이것은 실질적 공동체가 없는 계약으로 해석되는 이익사회 즉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사회일 수록 더욱 열광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밖은 온통 인간적 연대를 잃어 버린 삭막한 정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하지만 절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잘 살기를 원하는 관계로 자신의 기준을 조정한다. 따라서 스스로 삭막한 정글을 만들었지만 인간이란 본능적 부대낌과 살가움에 목말라 한다. 이 멘탈리티를 정치적으로 묶어 함께 기뻐 할 수 있는 금메달로 정의하여 선동하면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 때문에 아무나 껴앉고 웃을 수 있다. 이 살가운 풍경, 오랜만이지 않은가?
공동체 지향적인 사회라면 이 살가운 풍경에 열광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항상 인간적 연대를 적당히 유지하는데 금메달을 땄다고 더 살갑고 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저 그 노력과 영광에 박수 정도. 그런 사회는 아마도 이배영을 함부로 영웅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실패로 얻은 국가적 영웅 타이틀을 4년동안 노력한 금메달의 영광과 바꾸기 위해 올림픽에 출전한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래서 금메달보다 더 행복할지 모를 일 아닌가. 대게의 사람들이 올림픽을 국가적 행사나 국가적 경쟁 무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올림픽을 사생활로 본다. 어떤 개인이 어떤 개인과 4년동안 고독과 외로움을 통해 수련한 자신을 겨루는 일이다. 현대 사회의 미디어 때문에 다 까발려 지긴 하지만 금메달? 그 영광은 그의 오랜 수련에 대한 영광일 뿐. 국가적으로 그게 모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올림픽 10위? 올림픽 10위인 우리나라는 영장 없이도 인도에서 촛불 켜고 쥐새끼 쥐구멍엔 볕들 날 없다고 외치면 강제로 잡아가고 64일째 단식으로 억울하게 뺏긴 밥그릇 좀 찾아 달라고 물이 가득찬 폐를 부여 잡고 있어도 그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올림픽 10위 따위를 국가적 규정으로 인식하는 이런 천박한 주책에서 벗어 나야 한다. 이런 수준의 교양이 정권이나 권력으로 부터 나왔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더욱 치명적이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제 밥그릇 못 찾은 이배영을 안타까워하며 제 생활속의 밥그릇은 어디다 뒀는지도 모르는 못 가진 사람들의 순진함이다. 천박한 주책은 그래도 최소한 이런 순진함을 이용이라도 한다. 대한민국, 올림픽 10위가 네 밥그릇 보다 중요해, 64일 단식하는게 뭐가 중요해 올림픽 10위라니까. 국가가 공동체일까. 특히 오늘날 우리가 사는 국가는 구성원이 있고 공동체가 존재하는 국가일까. 공공이 민영으로 치닫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못가진 자들 끼리 서로 도와 밥그릇 찾아 주는 일에 이렇게 인색해도 되는 일일까. 올림픽은 사생활이다. 그 사생활에 박수쳐줄 여유가 있어 좋다. 64일째 단식으로 제 밥그릇 찾는 사생활에도 우리의 여유가 발휘되고 다시는 억울하게 뺏길 일도 제 혼자서 고통 받아야 하는 일도 없기를. 하지만 오늘도 그들은 죽어 가고 있다... 언제쯤 그들이 먹을 수 있을지...
개인의 영광과 기쁨을 전통적이거나 체제적 멘탈리티에 묶어 함부로 나누려는 시도는 개인의 독립적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언론매체와 국가로 부터 나온다. 이것은 실질적 공동체가 없는 계약으로 해석되는 이익사회 즉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사회일 수록 더욱 열광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밖은 온통 인간적 연대를 잃어 버린 삭막한 정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하지만 절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잘 살기를 원하는 관계로 자신의 기준을 조정한다. 따라서 스스로 삭막한 정글을 만들었지만 인간이란 본능적 부대낌과 살가움에 목말라 한다. 이 멘탈리티를 정치적으로 묶어 함께 기뻐 할 수 있는 금메달로 정의하여 선동하면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 때문에 아무나 껴앉고 웃을 수 있다. 이 살가운 풍경, 오랜만이지 않은가?
공동체 지향적인 사회라면 이 살가운 풍경에 열광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항상 인간적 연대를 적당히 유지하는데 금메달을 땄다고 더 살갑고 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저 그 노력과 영광에 박수 정도. 그런 사회는 아마도 이배영을 함부로 영웅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실패로 얻은 국가적 영웅 타이틀을 4년동안 노력한 금메달의 영광과 바꾸기 위해 올림픽에 출전한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래서 금메달보다 더 행복할지 모를 일 아닌가. 대게의 사람들이 올림픽을 국가적 행사나 국가적 경쟁 무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올림픽을 사생활로 본다. 어떤 개인이 어떤 개인과 4년동안 고독과 외로움을 통해 수련한 자신을 겨루는 일이다. 현대 사회의 미디어 때문에 다 까발려 지긴 하지만 금메달? 그 영광은 그의 오랜 수련에 대한 영광일 뿐. 국가적으로 그게 모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올림픽 10위? 올림픽 10위인 우리나라는 영장 없이도 인도에서 촛불 켜고 쥐새끼 쥐구멍엔 볕들 날 없다고 외치면 강제로 잡아가고 64일째 단식으로 억울하게 뺏긴 밥그릇 좀 찾아 달라고 물이 가득찬 폐를 부여 잡고 있어도 그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올림픽 10위 따위를 국가적 규정으로 인식하는 이런 천박한 주책에서 벗어 나야 한다. 이런 수준의 교양이 정권이나 권력으로 부터 나왔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더욱 치명적이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제 밥그릇 못 찾은 이배영을 안타까워하며 제 생활속의 밥그릇은 어디다 뒀는지도 모르는 못 가진 사람들의 순진함이다. 천박한 주책은 그래도 최소한 이런 순진함을 이용이라도 한다. 대한민국, 올림픽 10위가 네 밥그릇 보다 중요해, 64일 단식하는게 뭐가 중요해 올림픽 10위라니까. 국가가 공동체일까. 특히 오늘날 우리가 사는 국가는 구성원이 있고 공동체가 존재하는 국가일까. 공공이 민영으로 치닫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못가진 자들 끼리 서로 도와 밥그릇 찾아 주는 일에 이렇게 인색해도 되는 일일까. 올림픽은 사생활이다. 그 사생활에 박수쳐줄 여유가 있어 좋다. 64일째 단식으로 제 밥그릇 찾는 사생활에도 우리의 여유가 발휘되고 다시는 억울하게 뺏길 일도 제 혼자서 고통 받아야 하는 일도 없기를. 하지만 오늘도 그들은 죽어 가고 있다... 언제쯤 그들이 먹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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