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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008/12/02 16:00 /

컨퍼런스 스피커로 나가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클라이언트가 요구사항을 자꾸 바꿔여, 어떻게 해야 하죠?"
"요구사항은 사람 마음 입니다, 움직이는 겁니다. 바뀌는게 당연하죠."
"..."

"클라이언트가 뭐도 모르면서 아는척해서 힘들어요"
"모르니까 여러분을 돈 주고 부른거죠, 아는척 하는 것 받아 주는 것도 프로젝트의 일부분 입니다."
"..."

"무슨 짓을 해도 클라이언트와 관계가 안풀려요, 어떻게 해야 하죠?"
"프로젝트 하시면서 여자친구 계속 만나십니까?"
"네"
"프로젝트 하시면서 동창회도 나가시고 그러시죠?"
"네, 연말이라 모임 많죠..."
"마지막으로 영화 언제 보셨는지요?"
"지난 주말에요.."
"그러니까 클라이언트와 관계가 안풀리는게 당연하죠... 그 시간에 클라이언트와 대화 하세요"

어차피 인간이 하는 일에 인간 관계가 없고 업무 관계만 존재하는 방식은 없다. 사람들은 업무하는데 인간이 개입하면 나이브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그렇치가 못하다. 개나 소나 글로벌 스탠다드 한다는데 글로벌 스탠다드는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가 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비즈니스 환경은 프로세스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일을 한다. 더 인간적이라서 좋을까? 아니면 그것이 옳을까, 그를까? 그래서 프로세스가 일하도록 체제를 바꿔야 할까? 알 수 없다. 다만, 일이 되게 하는 방법 중에, 최소한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인간을 빼놓는 것은 감히 오류라 말 할 수 있다. 이것은 용기와 지난한 대화를 대하는 자세이다.

2008/12/02 16:00 2008/12/02 16:00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초죽음

2008/10/30 10:57 /

나의 자기 확신은 사적인 곳 보다는 공적인 곳에서 독선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나에게 있어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신념과 경험으로 나는 스스로 합리하고 남을 통제하려는 경향 또한 다분하다. 다만, 그가 결과는 원했던 것이 아니어도 그것을 끌어 내는 논리가 원더풀할 경우, 나의 합리는 여지 없이 깨진다. 그 파괴엔 미련도 애착도 없이 그저 통쾌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언제던가?

귓볼 뒤에 멍울이 잡혔다. 언제 부터 자리 잡은 건지 모르겠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음주단속을 하면 알코올 성분이 나올 것만 같은 긴장감 따위는 견딜만 하다. 인간적으로는 어떻게든 손 붙잡고 가려고 했다. 젠장, 왜냐하면 친정회사니까, 일면식은 그리 없지만 냉정보다는 열정으로 뭐를 춤추게 하는 교과서적 타이틀의 감흥처럼 끈끈한 맛을 살리고 싶은 끄나불은 나의 자기확신도 아니고 합리도 아니며 그(들)의 논리도 이성도 아니었다.

태도, 이것은 자세와도 동향인, 이것엔 미움이 있다. 태도에 따라 미움은 자석처럼 들러 붙어 다닌다. 그러니 소름끼칠만도 하다. 요즘 세상이 태도 보다는 다른 것에 치중한다 하더라도 막상 이 태도 앞에서 우리는 그(들)가 살아온 인생의 요약을 보곤 한다. 태도가 없으면 지식이 있더라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허술하게 살았는지 자신에게 얼마나 관대했길래, 하지만 측은함 따위는 들지 않는다. 태도는 미움으로 건너 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내쳤다.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을 두지 못할 만큼 엉망인 일일일을 본다. 너무 터무니 없다보니 축처진 장은 꼬일대로 꼬였는데 30대초반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바뻐서 좋았다며 객기 부리던 시절처럼 바쁘긴 10년전만 못지 않아서 초죽음이다.

2008/10/30 10:57 2008/10/30 10:57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커뮤니케이션

2008/08/25 16:55 /

나는 충분과 부족, 필요와 불필요에 대한 인정이 빠른 편이다. 어떤 이는 이걸 끈기라고 하던데, 나는 대책 없는 끈기가 스스로를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숙달된 몸은 그것에 먼저 반응한다. 정신력 같은 것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프면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조난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내가 아프면 덩달아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이걸 책임이라고 하던데, 책임은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곤 한다. 사람들은 책임이란 언어에 지나치게 관대해서 때로는 이걸 자신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신감은 아무 것도 책임질 수 없다. 그건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만의 인정일 뿐이다. 게다가 쉽게 지친다. 자신감도 스스로를 오래도록 보호해주진 못한다. 책임과 자신감을 섞어 일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를 보호할 이기심을 가진 존재다. 오래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며 제수명대로 살며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 더 부대끼는 방법 밖에 없다. 이걸 나는 조직이라 부른다. 부대끼는 방법은 더 많이 얘기하는 것이다. 더 많이 얘기할 수록 조직은 명쾌해진다. 명쾌한 조직은 더 많이 얘기하게 되고 얘기하면 할 수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 서로를 보호하는 일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책임은 분산되고 수명을 단축하는 일도 줄어 든다. 결국은 서로의 생명을 돌보며 행복해지고 스스로의 삶은 명쾌해진다.

2008/08/25 16:55 2008/08/25 16:55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천부당 만부당

2008/04/29 17:56 /
잘 알려지고 있진 않지만, 감사원이 몇몇 공기업에 대해 표적 감사를 진행중이다. 일부 언론에서 공기업의 방만경영에 대해 모진 소리를 했던 것도 같다. 공기업이 국민의 세금으로 제주머니 챙기고 신의 직장으로 발돋음 된 각종 혜택을 받아 온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할지 모른다. 하지만, 애굿게도 민간기업과 공기업간 이루어진 자유 계약의 건을 빌미 삼아 민간기업에게 부당한 변제처리를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고약하다. 애초에 감사를 대비하거나 그들 나름의 관리 기준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상호 성실과 신의로 해당 사업을 완료하고 시원한 쫑파티까지 한 마당에 이제와서 사업대금 일부를 무조건 변제하라는 요구는 도대체 어떤 '비즈니스 프랜들리' 에서 나온 것일까? 게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나온 지적사항에 대해 당사자들이 책임질 생각은 안하고 돈없고 빽없는 업체한데 덮어씌워 변제대금을 요구하는 치졸함은 어디서 배워먹은 상식이냐? 공공연하게 해당 공기업 사장을 까서 물러 나게 하고 제수하를 낙하산 태워 내려 보내고 싶으면 그네들끼리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우리는 배알이 좋아서 비위가 좋아서 말 섞고 술 잔 돌리는 줄 아는가.
2008/04/29 17:56 2008/04/29 17:56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턴 오버 시대의 노동

2007/02/08 14:40 /
- 매우 현실적이고 전문적인 잡지에 선동적이고 정치적인 칼럼을 써서 보냈다.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정의가 혁신이라는 경영적 단어와 시너지를 내며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프레임워크를 정리하는 일은 어떤 신생 산업에서든 마찬가지 절차였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세스와 등식을 이루던 문서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찌질거리던 거지 근성은 여전한데 벌써 혁신을 다루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면 이 문제는 적응력이 아니라 노동 생산성과 경영의 문제이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 하는 것으로 노동 생산성을 이해 하는 원시적 단계에서 A 에서 B , B 에서 C , C 에서 다시 A 로 피드백 되는 시스템 단계가 성립되면 이로서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정의된다. 좀 더 복잡한 경영이 개입하면 A 의 일을 하는 조직과 구성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왜 A 의 일을 하는데 그 조직이 필요한지 고민하게 된다. B 의 일을 하던 조직이 A 의 일을 하면 안될까?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도출된 제목이 멀티 플레이어이다. 노동자는 멀티 플레이라는 사상에 매우 민감하다. 즉 사용자가 노동력을 복합적으로 착취하려는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급여 수준은 낮고 그에 못지 않게 근무 환경도 열악하며 클라이언트와 부대껴야 하는 감정노동은 그 이상인데 이일 저일 다 하라는 요구는 쉽게 반발을 산다. 이러한 반발은 대체로 대기업이나 포탈로의 이직을 부른다. 마치 그곳에 가면 그런 일은 다신 없을 것만 같은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말이다. 턴 오버(Turn-over), 프로세스가 기술적으로 시스템이 되지 못한 때 유행했던 트레이드 오프(Trade-off)와 마치 동어 반복 같으면서 이행 대립한 말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이직 환경과 낮은 진입 장벽으로 인력과 자원의 턴 오버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안의 노동자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행복을 추구한다. 일단은 멀티 플레이어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간단한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형제 같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보편적인 행복이-업무적으로-추구로만 끝나는 이유는 턴 오버와 트레이드 오프라는 시류에 편승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트레이드 오프가 성행하던 시대에는 최소한 정의하기 위한 저항이 존재했고 그것을 프로세스라는 현장의 기술적 부분으로 이해했다. 턴 오버의 시대인 현재는 어떠한 저항도 존재하지 않는다. 싫으면 중이 떠나 다른 절을 찾아 다니는 자원에게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저항은 없고 분노만 있기 때문이다. 기획에서 디자인, 개발에 이르기까지 용역이 대부분인 업계에서 용역 단가를 심오하게 생각하는 노동자가 없으니 사용자는 노동의 신성함을 망각하고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게 된다. 프로세스의 정의가 필요했을 때 그것을 A 로 정의하지 않고 AB, AC 로 정의했다면 지금보다 더 심한 턴 오버의 시대를 맞이 했을 지도 모른다. 입맛에 맞게 옮겨 다니는 활동은 사실 행복의 순간이나 완성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마음속엔 노동에 대한 신성한 의식이 없는 분노의 앙금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성이 결여된 경영의 추구가 성장만을 동력으로 삼아 추구만으로 끝나고 경영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턴 오버가 노동자에게 그러한 허무를 남기게 될까 안타깝다. 선배들이 구축한 프로세스가 지나치게 계몽적이라 혁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오늘날 이 업계를 이끄는 현재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칼로리가 원동력인 노동의 신성함을 견적서의 산식 안에 퍼다 나르는 시대는 지났다. 아울러 자신의 노동을 경시하는 턴 오버의 태도로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도 그쳐져야 한다. 경영의 입장에서도 멀티 플레이어가 멀티 플레이어다워질 수 있기 위해서는 멀티 노동의 신성함을 이해하고 마땅한 노동 임금을 지불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07/02/08 14:40 2007/02/0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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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달전, 구글로 부터 들어온 인바운드 영업에 대해 회사 내에서 말이 많았나보다. 언어가 달라도 구글 유저 인터페이스의 아이덴티티는 글로벌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와 문화의 발전은 다분히 자생적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인터넷을 닮아 있지 않고 기술의 진보 측면에서도 결코 그들과 뒤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이나 서비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한국적 상황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패턴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라는 점이다. 그동안 200억에 달하는 R&D 투자를 계약하고 여러 포탈 업체의 인수설까지 가십되던 구글의 한국 시장 진출 전망에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 중에 하나가 바로 구글의 메인페이지와 검색 결과 페이지의 새로운 구성이었던 것은 업계 뿐만 아니라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회자된 이야기다.

즉, 검색 포탈이 주도하는 한국의 인터넷 시장에서 검색과 다양한 사용자 어플리케이션 통합 위주의 구글 전략을 일부 수정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사업 방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라는 점은 http://www.google.co.kr 의 모습에서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경우, 구글은 여러 나라에서 적용하고 있는 전략을 한국 시장에 그대로 도입하여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 변화를 꾀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전세계 검색 시장의 60% 를 차지 하고 있는 구글의 고자세가 중국의 보안 당국 앞에서 그들의 민주적인 철학을 버린 사례는 비즈니스를 위해 얼마든지 현재의 구글에서 변화할 수 있다는 탄력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까? 구글이 한국의 몇몇 웹에이전시에 검색 서비스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한국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제안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와 같이 접수 되었다.

구글의 영업 문의를 드롭(영업, 제안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용어)결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영업이나 제안 요청을 접수 받고 참여를 결정하는데 검토해야 하는 지표는 대략 1)사업성이 있는가? 즉 사업을 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가? 예산이 있는가? Profit 을 낼 수 있는가? 라는 기본 사업성에 관한 Check Point 를 만족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2)내부 자원이 있는가? 즉 사업을 수행할 인적 물적 자원이 있는지 파악한다. 자원이 있고 없음 뿐만 아니라 자원은 있되 해당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자원인가 판단한다. 3)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즉 단기적으로 사업성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영업 시너지를 높일 수 있으며 향후 어떤 시점에 이익을 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거나 직접 수익이 아닌 간접 가치가 증대될 수 있는지 파악하게 된다. 우선 순위는 당연히 사업성이다.

제 아무리 구글이라도 없는 건 없는 것이다. 구글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삼는 입장이라면 구글의 사업역량이 그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구글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한국적으로 개편하는 프로젝트, 즉 구글 유저 인터페이스의 로컬화라는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로컬화를 통해 구글이 이룰 목적과 그 사업 자체를 논하는 입장 과는 별개로 취급되어야 한다. 예산은 있는가? 견적을 보고 결정할 것이란 말은 일단 예산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보고하고 협의 중이란 말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란 뜻이다. 당장은 살펴본다는 말은 아직 의사 결정도 타당성 검토도 내부적으로 진행중이란 뜻 되겠다. 언제 할지도 모르는 사업에 사람을 투입시키고 보는 것은 경영상의 도덕적 해이와 진배 없다. 의사 결정은 어디서 하는가? 구글의 글로벌 특성상, 당연히 이 부분은 탑메니지먼트가 결정할 사안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최고 의사결정권자까지 공유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그것만으로도 몇달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 즉 사업 의지가 약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게다가, 구글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단기간안에 한국적으로 바꾼다는 전략은 포탈화 전략이라던가 서비스 전략 차원에서 검토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부가가치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전체 사업성은 매우 떨어진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자원은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구글의 의사결정이 글로벌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언어 소통 가능자가 필수일 것이다. 투입 예상 인원 중에 단 한명이라도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런 자원이 없다. 구글의 파급효과상 많은 유저들의 평가에 직면해야 함으로 상당한 수준의 HCI 및 UI 지식 베이스와 함께 상당한 숙련도의 기술자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당장은 그런 수준의 기술자가 없다. 이왕 노동임금을 받고 하는 것이라면 잘해야 하는 것이 상호간의 비즈니스 신의일텐데 내부 자원이 아주 없기도 하고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도 하여 뺄 자원이 없다면 본 프로젝트를 할 수 없음으로 결정한다. 이런 저런 판단을 유보하고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것도 경영을 하는 사람으로써 일종의 직무유기다. 마지막으로 전략적인 판단에서 구글은 네이버 보다 휠씬 매력적이다. 하지만, 앞의 두가지가 너무 충족이 안되는 경우, 지나친 욕심은 판단을 흐릴 수 있다. 본 건에 대해서는 아깝긴 하여도 이번엔 상황이 허락치 않으므로 드롭이다. 다른 프로젝트를 잘하고 있고 그리고 계속 잘한다면 기회는 있다. 없어도 지난 일을 아쉬워하지 말고... 따라서 구글의 제안을 드롭한 이유가 되겠다. 사업성 판단해서 안되는 건 구글 할아버지가와도 안되는 것이다.

2007/01/25 14:26 2007/01/25 14:26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원상태로 복구

2006/07/19 17:19 /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슈퍼맨이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영웅인양 나서서 남의 허물까지 책임져야 할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원복(원상태로 복구, Roll Back)의 의미는 경험상 복잡한 이해관계를 양산하게 된다. 지루하고도 치졸한 책임공방을 치루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의 정밀한 야비함마저 요구하기 때문에 이전에 쌓아 놓았다고 생각한 인간관계조차도 일시에 허물어 진다. 그것이 시스템에서의 원복이 가지는 정치성이다.
시스템을 구현하고 런칭을 시키는 유종의 미의 순간에 원복의 가능성은 예상 스케쥴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그동안 종사하였던 10개의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그랬다. 어느 클라이언트가 우리가 남들과 다른 조직적 차별성은 무엇인가? 크리에이티브인가? 마케팅인가? 라고 물으면 '문제 해결 능력' 이다, 라고 답하던 자신감이 무색할 정도로 처음 당해보는 원복의 순간이 촉각으로 다가오자 분위기는 살벌해지기 시작한다.
여러 부분을 맡고 있는 책임자들은 문제 해결의 능력을 보이기 보다는 일단 침묵한다. 침묵은 조직 처세 중에서 면피의 기초 작업이다. 말을 아낀다는 것은 언변의 실수도 있겠지만, 일단 은폐하고 조용히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럴 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때로 독립군이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선을 다해 문제해결을 한다는 것은 동업자였다는 일말의 인간적 유대마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보이기는 싫다.
아직 원복의 의미를 체감하지 못하는 팀원들에게는 원복되면 두달동안 집에 못갈줄 알라며 엄포를 놓는 긴장감 서린 선언으로부터 시작한다. 스케쥴에만 있었던 가능성을 존재치않게 하기 위해 어떤 것이든, 어떤 작고 하찮은 단서든 찾아 낼 것을 종용한다. 내가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문제를 파악하고 종용하거나 모티브를 주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 실행하여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결국 72시간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원복과의 사투를 벌인 끝에 현재 원만한 운영 중이다. 8개월, 객지생활, 2주간 런칭 준비, 마지막 72시간의 힘겨운 철야... 오늘은 삼겹살과 소주가 제격이다. 이제 비가 내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속에 조금씩 틈이 생기고 있다. 비가 내려 살벌하게 바뀐 환경도 원상태로 복구 되어야 할 텐데... 큰일이다.

2006/07/19 17:19 2006/07/19 17:19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Web 2.0 의 체제의심

2006/02/15 22:03 /
요즘 IT 에서 Web 2.0 이 뜨거운 감자다. 벌써, 개념화 단계에서 실천적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전에 이 개념을 들었을 때, '트랜드에 목맨 사대주의 노드(Node) 들의 선동' 쯤으로 일갈해버렸다가, 두 달 전에 시즌 첫 철야보딩을 가던 중 졸음을 쫓기 위해 주고 받았던 얘기에서 다시 내 생각의 범주로 쏜살 같이 들어오게 되었다.
예상은 하였으나 보딩메이트는 web 2.0 의 신봉자였다. 대번에 김중태의 시만택 웹 을 추천했고 지난 주 용산 회집에서 건내 받았지만,(고맙습니다) 이미 그 두달의 시간동안 web 2.0 에 대해 꽤 공부가 되어 있었다. 공부는 바로 의식화 되어야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 나와 신봉자는 만날 때마다 web 2.0 아니면 참여연대식 토론(제주도에서 참여연대 간사님들과 보낸 이틀밤동안 터득한 방식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을 즐기게 되었다. 열뗬다기 보다, 즐겼다는 게 맞다. 그랬기에 파무침 같은 몸을 이끌고 남대문 순대국집이나 용산 회집을 기웃거릴 수 있었을 테니까.


방금 전에도 신봉자는 내일 월차를 내고 web 2.0 conference 에 같이 가지 않겠냐며 연락이 왔다. 언감생심, 지방에서 클라이언트의 위세와 나의 자존심을 줄타기 하고 있는 新왕의 남자에게 있어서 몸의 위치는 세치줄을 벗어 날 수 없었다.(미안합니다) 신봉자보다 먼저 간 제자들은 개념과 토론의 단계에서 실체성으로 들어난 web 2.0 의 열기에 긴장 됐는지 현장 실황을 해왔고, 그대로 나에게 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일단, 팀 오라일리가 등장하는 다음달, 이 열기는 보일러에서 잔뜩 움츠리고 있다가 단번에 열기가 아닌 현상이 될 조짐이다.


Web 2.0 을 간소적확하게 접하고 싶다면 이정환 닷컴의 관련 포스트를 무료로 읽어 보길 바란다.


고로, 여기서 국민의 9.9할이 모르는 web 2.0 에 대해서, 9.9할에 포함되는 사람으로써 되던 안되던 기술 논리를 펼 생각이 없다. 열기가 있는 영장류 속에 냉담한 파충류로 사는 것을 즐겼던 속사정을 설명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지만, 열기에 대한 경계는 확실하다. 열기를 즐기는 혈액일 수록, 어떤 현안에서도 무임승차에 익숙해질테고 그때마다 쌓인 촛농은 주체를 다른 것과 다르지 않게 일반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다행스러운 건 web 2.0 이 다루는 소재가 독과점적인 MS 나 네이버의 폐쇄회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별한 테크놀로지의 플랫폼에서 사용자의 편의성을 미끼로 던지는 윈도우가 아니라 것, 확장성 브라우저 지원, 어느 언어도 탐색 가능한 유니코드, 사용자 경험의 확대를 위한 AJAX 등이 기동되어 인간 활동에 의해 만들어 가지는 메카니즘의 창조를 돕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러한 플랫폼이 아니라(혹자는 web 2.0 이 플랫폼의 변화라고 하는데, 귀에 걸던걸 코에 걸었다고 플랫폼이 달라지진 않는다.)인간활동에 의해 만들어 가지는 메카니즘 이란데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는데, 정보의 분류에 참여하고 해석하는데, 마지막으로 정보를 생산해내는데 협력적이냐는 물음에 긍정적이어야 성립되는 메카니즘 되겠다. 컨퍼런스에 스피커나 참석자는 web 2.0의 메카니즘을 더 이상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 실체로 접근하고자는 사람들이다.(그래서 나는 신봉자에게 비즈니스적으로 "누가 먼저 실천하는가" 만 남았음을 설했다.)


잠시, web 2.0 의 개념적 원칙인 참여구조가 가져오는 네트워크 효과, 체계질서의 혁신과 분산되고 독립된 개발자들을 끌어 모으려고 짜인 사이트, 콘텐츠 신디케이션에 의해 가능해지는 가벼운 사업모델, 소프트웨어 채택 순환의 종결(영원한 베타), 긴꼬리 효과(Long Tail) 등에 기대어 현실의 열기와 더불어 생각해볼 때 역시 대한민국이란 씁쓸한 단정은 허술하지 않다.

다시, 컨퍼런스에서.. 참여구조와 체계질서의 혁신에 열기를 보여준 0.5할의 참여자들에게 묻는다, 컨퍼런스 스피커가 과연 이 참여와 혁신에 적합한지 의문은 들지 않았는가?, web 2.0 을 핑계 삼아 성장 동력으로 삼기에 충분한 정보 권력자들이 모여 열기를 팽창 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싸이좋게 살 수 없는 이유를 제공한 SK, 내 정보는 내 정보 니 정보도 내 정보인 네이버가 web 2.0 을 얘기하고 그에 열광한다?
어쩐지 이 열기는 그들이 앞으로 분명히 펼칠 한국형 web 2.0 의 출발이며 독점적 정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사전 포석 쯤으로 보인다. 나는 그 열기에서 2년전 노무현 정권이 보여준 정보 통합의 마인드, NEIS 의 사상을 보게 된다.


인간의 적극적 활동에 의해서 만들어질 어떤 메카니즘이 체제의 혁신에서 비롯될 것이란 희망적인 메시지는 단숨에 한국형 체제의 종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정보 통합을 통한 권력의 유지를 선호하는 실용진보의 씁쓸함을 느낀다.(정보의 통합은 정보의 권력을 낳는다. 왜냐하면 통합은 독점을 의미하고 독점속에 나누어야 생기는 기본권은 줄어 들거나 없어지기 때문이다.) 참여와 혁신을 통한 정보의 질적 향상도 애초에 어떤 2.0 속에서도 실현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보의 질적 향상은 정보의 양적 보편성에 대한 반기이지만, 나아가 정보 복지 즉, 나누는 정보로 이어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특히, 정보를 이합집산하고 그를 통해 자본 계정을 만들어야 하는 네이버 같은 집단은 폐쇄성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체험적으로 구글 애드센스를 설치해보았으나, 그로 인해 구글이 web 2.0 의 모범생인지, 수혜자인지 구분이 모호해졌다. 게다가 의심까지...)
한국형 web 2.0 은 우연에 기댄 낮은 정치 수준에서 원칙없는 모호성이 가미 되어 체제 2.0 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2006/02/15 22:03 2006/02/15 22:03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소통의 개념

2006/02/10 14:06 /
6시 동대구발, 서울행 KTX, 8시에 시작할 회의 전까지 그나마 선잠이라도 자려던 요량은 여지 없이 깨지고 대전역까지 쉴새 없이 전화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직업이란 태두리에서 가치의 노동이 이루어 지기 위해 여러 필요 요소를 들었을 때, '커뮤니케이션 하다'(이하, 소통하다) 라는 행위가 있다. 중요한 것으로 따지자면, 이보다 더 한게 없다. 지식이나 기술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수적 촉진이라 봐야 할 정도이다. 하지만, 흔히 소통하다 라는 동사절를 가장 잘못 이해하고 있는 유사 동사절이 있다. 그것은 '말하다' 이다.


직업에 있어서 지식을 말하고 기술을 말하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소통 하느냐에 따라 리더쉽과 태도로 연결된다. 그래서 소통하다라는 것은 감관을 이용하는 유용함의 장르가 아니라, ~에 의한 설명의 장르, 그 설명은 지식과 기술이 아니라 내가 이룬 세계의 장르가 대상이 된다. 내가 이룬 세계의 장르는 지식과 기술, 사상과 이념, 표정과 자세, 억양과 눈빛 등 현재의 나를 이룬 과정의 총체가 된다. 의지와 표상이 다른 세계가 순간적으로 소통을 이룰 때, 그 총체는 오로지 나를 보여주며 소통을 하나의 사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냥 말하다와 소통하다는 테마가 틀려야 하고, 소통의 대상(대체로 사람)에 대해 책임과 경외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그냥 말하다 만으로는 어떠한 공유도 진정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내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타인의 세계를 엿보기 위함이 아니라 내 세계로의 초대임을 잊었을 때, 소통하기는 말하기가 되고 그냥 말하기는 쉽게 세계간에 충돌을 야기 시킨다. 그러므로 힘들고, 우울증(센치의 우울과 다른 우울)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아직 그의 세계가 누구를 초대할 만큼 형식이 없거나, 애초에 품위, 즉 싸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소통해야 될 시점에, 내용 없이 그냥 말하려던 사람이 있어 다시 원래 자리에서 소통의 테마로 돌리기 위해서는 대략 1시간, 피곤과의 투쟁, 저녁 식사 정도는 가볍게 스킵해줘야 한다. 사회적으로 그 책임 때문에 나에게 노동을 허락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그나마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것 쯤은 서글픔과 거리가 멀다.
2006/02/10 14:06 2006/02/10 14:06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REQ: 대화법

2006/01/11 02:02 /
힘들이지 않고 남을 설득할 수 있는 재능은 축복에 가깝다. 하느님의 계시처럼 내려지는 축복에 가깝기에, 촛불이 녹인 촛농이 굳어 자기화가 되는 아우라와 다르다. 배워 익힌 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하다. 그래서 그 재능 앞에서 부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게 된다. 참고로 하느님은 스스로 돕지 않으면 알아서 도와주지 않으신다.


Ex. #1 무시 후 정리
80갑자 내공 소유자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프로젝트 초기 단계 회의 시, 중도에 신규 시스템의 도입 시 기선제압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느님도 인간을 만드시며 먹지 말라는 사과를 먹을 줄 모르셨던 것 처럼 최초의 무엇은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기껏해야 예상 정도 이다. 그 무수한 예상을 늘어 놓는 것은 지식의 발현이나 리더쉽이 아니라 갑자 형성이 안된 설레발일 뿐이다.
최초에는 최초로 만나는 온갖 외갓 사람들이 인식적으로 경계하며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남다른 방법을 동원한다고 하지만, 결국 예상을 늘어 놓는 설레발에서 벗어 나지 않는다. 얘기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도대체 처음 제기됐던 문제 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때, 설레발은 그 난형난제의 이야기속에 참여 하기를 유혹한다. 유혹의 이 순간이 이야기의 무시를 통해 관심의 빛을 밝혀야 하는 때이다.


!주의
물어오는 것에 대한 완벽한 무시가 아니라,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무시의 모양새이다. 상대가 묻는 것은 대답해줘야 한다.


무시에서 온통 무시로 마친다면, 상대는 관심을 거둬들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가차없이 변모시킨다. 무시는 아주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집나간 정신이 아니다. 무시는 거만의 모양새와 관찰의 정신되겠다. 모양은 날라리처럼 보이되, 돌아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관찰하여 머리속에 정리해 두고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흙탕물에서 놀던 사람들은 그속에서 나와야 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끈적끈적하니까... 이때, 이 무시로 인간의 관찰적 정신은 몇개의 카테고리를 이용하여 흙탕물을 버무려서 찰지게 만들고 앞으로 얘기해야 할 것들과 누가, 언제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가야 하는지 조각내어 정리해준다. 알고 있는 예상에 대한 늘어 놓음이 아니라, 현재까지 자리에서 나온 얘기들을 묶고 분리한 정리만으로 기선제압은 충분하다.


!Action
화이트 보드를 이용해서 카테고리를 글로 쓰고 간단히 도식화시켜주면 90갑자 되겠다.


요건정의(REQ : Requirement) 단계의 첫번째 대화법 되겠다.
2006/01/11 02:02 2006/01/11 02:02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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