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인 김국현님을 포스코 지하에서 우연히 만났다. 밖에서 술한잔은 해줘야 친구가 되는 정신구조상으로 보자면 김국현님은 아직 친구는 아닌 셈이다. 근데도 사람 참 좋은 미소로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오래전 내 누추한 세미나에 자전거를 끌고 와서 근 3시간을 앉아 계시다가 돌아 가셨는데 그때도 "언제 술한잔 해요" 가 인사였고 엇그제도 같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올해 남은 저녁 스케줄을 훌터 보았다. 이거 대뜸 전화해서 한잔 하자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검색어 '생활'에 대한 141 개의 검색 결과
- 2008/12/17 만남 by DrunkenSTAR
- 2008/12/10 화요일 오후 3시 제주도 by DrunkenSTAR
- 2008/11/13 옹아리 by DrunkenSTAR (2)
- 2008/09/26 엄마 by DrunkenSTAR
- 2008/09/06 경솔 by DrunkenSTAR
- 2008/07/14 요즘 by DrunkenSTAR
- 2008/06/12 신중함, 우유부단 by DrunkenSTAR
- 2008/04/22 나와 아내의 아기 by DrunkenSTAR (8)
- 2008/04/16 진통 by DrunkenSTAR
- 2008/04/15 기분 by DrunkenSTAR
화요일 오후 3시 제주도 중문단지에서 컵라면 하나 먹겠다고 편의점을 찾아 다녔다. 연리지 식물원 건너편 패미리마트에는 뜨거운 물이 다 떨어 졌단다. 직원은 성가신 표정도 아쉬움도 없었다. 중문단지에 분식집이 있던가? 어제 말아 마신 술이 여전히 뱃속에서 파도타기를 한다. 잔득 구겨진 속이 미쳐 풀리기도 전에 단출한 산행을 한 후 였다. 컵라면은 있는데 물이 없다. 오전 산행으로 인해 와이프가 들으면 입이 삐쭉 나올 '괜찮음' 을 발견했다. '등산 이거, 괜찮네' 화요일 오전 제주도 한라산행은 차마 누리지 못할 만큼 상쾌한 뻐근함이라고나 할까. 잦은 제주도 방문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정상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없었다. 제주도 택시아방도 겨울에 저렇게 한라산을 또렷히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주상절리 근처에서 떠날 시간을 가늠하고 있는데 방파제 위에서 해녀어멍 몇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 어멍 한분이 이미 숨이 끊어진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심장마비였다. 구급대가 도착했지만 심장마사지 몇번 하더니 얼굴에 담요를 덮어 급히 실어 갔다. 해녀어멍이 누워있던 자리에 물기가 축축하다. 12월9일 화요일 오후 3시, 제주도는 봄날처럼 더웠고 세상의 모든 물기는 전속력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내 손엔 여전히 컵라면이 들려 있었고 급히 베낭 안에 쑤셔 넣었다.
출산 휴가를 끝내고 회사로 복귀한 아내가 복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2박3일 워크샾을 가게 됐다. 갓난 아기 핑계로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아내의 회사는 허락하지 않았다. 너만 애 키우냐, 따위의 아주 유치한 이유로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종일 맡아 주시기로 했다. 나 마저 그 잘난 프로젝트에 목이 매어 야근이 잦은 터여서 아침에 잠깐 보고 밤 늦게나 되어야 아이를 잠깐 안아 볼 수 있었다. 아이는 뭘 아는지 모르는지 시큰둥한 표정이다. 아이를 한팔에 안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현지야 엄마하고 전화해 볼래? 여보, 현지 안고 있으니까 한번 불러봐
아내가 전화 넘어로 현지야 현지야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아이는 금새 표정이 달라지고 전화기 속으로 빨려 들어 갈듯이 몸을 뒤틀어 얼굴을 기울여 들이 민다.
여보, 당신 목소리 어떻게 알아 듣고 전화기로 얼굴 들이 민다.
그새 아내의 목소리가 뚝 끊기 더니 미안해 미안해 하며 펑펑 운다.
괜시리 나도 울컥해서 울고 말았다.
애기랑 처음 떨어져 보니 울만도 하지, 어머니가 한마디 거드시고 아이를 재운다며 들쳐 업으신다.
한참을 놀았더니 이를테면 책을 본다던가, 자료를 검색하고 모아 정리 한다던가, 깊이 생각한다던가, 노트에 또박또박 기록해 놓는다던가 하는 예전엔 습관이었던 것들이 도무지 성가시다. 에어콘은 줄창 켜 놓아 한낮 열기 따위는 알지도 못하는데 의욕마저 축 늘어져 버렸다. 덥다는 핑계가 나로부터 성립이 안된다. 바보된 기분이다. 한창을 열중하던 일을 놓고 보니 비로소 내가 버린 것은 순도 100% 짜리 가치관 불일치, 부조리의 뭉치가 아니라 한부분의 거대한 생활이었던 것이 확실해졌다. 그러하니 발동 걸릴 시간이 필요 한지도 모를 일이다. 걱정 안하고 두었던 다른 모든 생활이 염려스러워진다. 이 일을 어쩌나... 성가시다고 죽을 수도 없고, 살아야 할 일은 살아야 할 일인데 겹겹이 좋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 예전에도 있었다. 그때는 쫄딱 망했었다. 그때를 통해 자양분이 되었다면 최소한 망하진 않겠지 싶지만, 두려움... 이건 여전하다. 머리는 각성이 되는데 심장은 개조가 불가능한가 보다. 바람도 안분다, 옥상에 너른 빤스라도 날리면 그 희망에라도 기댈텐데. 소주 세병만에 인사불성이고 담배가 하루 두갑으로 늘었다. 지방간은 한캔 제대로 자리를 잡는 듯 하고 예전엔 쉬었던 사람들이 요즘은 왜이렇게 어려운지, 가슴속이 온통 공황이다. 나에게는 이미 IMF 가 온 듯.
3일전 태어난 나와 아내의 아기는 아직 '딸' 로 불린다. 나와 아내의 딸은 여느 사람이 생각했던 어여쁨보다 더 이쁘다고 얘기하여진다. 자기 자식을 말하는 부모가 으례 그렇듯 나는 '빈틈 없다' 고 대답해 준다.(아비는 모두 거짓말장이다.) 다 접어 두고, 겨우 3일이 지났지만 아기를 보는 시간 시간이 기가막힌 기적과 같았다. 그랬지만, 아내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헛젖을 빨다가 울어 버리는 아기를 보며 굵은 눈물을 몇차례 흘렸고 나도 아내를 달래다가 부여 잡고 울고 말았다. 세상일에 시니컬하고 덤덤했던 나도 아기를 굶길 수 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잠시 모유가 돌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울컥해버리는 모습이 영 이해 불가능이다. 앞으로 아기를 대하는 나의 마음에 얼마나 빈틈이 많을 것이며 이해 불가능한 감정들이 엉커버릴지 가늠할 수가 없다.
내 아기가 인생을 시작하던 날, 5명의 아기가 같이 또는 옆에서 태어났다.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 최소한 내 시야에 6명이 이 세상에 추가되었다. 부모라는 이유로 내 아기가 되었고 앞으로 수많은 빈틈과 이해 불가능으로 세월이 흘러 가겠지만 이 세상에 빈번히 일어나는 어느 시시한 시작일지라도 모두... 이 아기에게 축복을, 그리고 그 부모에게 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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