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다보니 무심한 담벼락에 관할 경찰서에서 부쳐 놓은 푯말이 보인다. "경찰은 항상 국민의 편에서 생각합니다" 경찰은 담벼락에 팻말 뿐만 아니라 무심한 도시 곳곳에 국민을 향한 갖가지 애정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영화배우 이준기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촛불문화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려 놓았나 보다. 이를 보고 어느 현직 경찰관이 반론을 한 기사를 보았다. 요지는 '촛불문화제는 더 이상 현행법상 평화로운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해산 시킬 수 밖에 없다' 는 것이다. 짐짓 이준기씨한테 어른으로써 충고와 타이름까지 덧부치는 글을 보니 오늘 아침 무심한 담벼락에 붙어 있던 경찰의 푯말의 생각났다. 역시, 립싱크인 것을 확인시켜 줄 것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현직 경찰관에게 현행법 좀 무시해주고 마음속의 얘기를 들어 달라고 관념적인 요청을 할 이유는 없다. 그 또한 추후도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한발도 전진하지 않는 호두껍질의 단단함을 천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위법행위자는 경찰의 연행에 순순히 동행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현직 경찰관의 비애는 그래서 강제적일 수 밖에 없는 연행의 절차를 '강제적' 이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니까 절대 불법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찰의 행위는 '항상' 정당하기에 그렇다는 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러하니 촛불집회에는 비보이가 나와 랩에 맞춰 공연하고 이를 구경하고 돌아가면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한다. 그는 촛불집회를 그저그런 '하이 서울 패스티발'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상황이 아주 평화롭지 않고 게다가 집시법 14조에 의거 주최자는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의 질서를 문란케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15명의 전의경이 시위현장에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쓰러지고 머리 터지고 방패에 찍힌 촛불집회참가자들 수를 취합해 들이 대고 부등식을 하자는 얘기인가? 누가 더 얻어 터졌는지, 그런 것을 상호 견주어 보자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보호 할 사람에게 맞는 것과 보호 받을 줄 알았던 사람에게 맞은 것의 차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다. 글세, 경찰과 국민의 차이가 어떤 차이인지 경찰임용교육과정엔 없는 것일까?

도로점거만을 준법의 준거로 삼는 현직 경찰관의 말은 역시 현직은 현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 이렇게 얄굿게 들릴까. 이는 오래도록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준법의식에 또아리를 튼 대표적인 인식의 한계와 같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킬 민주화의 과정에도 이 무단 거리 점거의 준법의식은 경찰의 주된 자세였다. 민주화건 뭐건 광장과 거리를 지키는 경찰의 모습은 민주화 이후에도 똑 같은 경찰의 모토다. 왜 민주화가 필요한지, 왜 저들은 저런 주장을 하는지, 경찰의 수동적이며 관성적인 거리지키기의 강제적 연행방식을 알면서도 왜 저들은 거리로 나오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무지한 인식의 한계가 오늘 서울 거리에서 시민과 경찰이 대치할 수 밖에 없는 방점인 것이다. 민주화를 이루는 것도 미친소를 먹지 않는 것도 교통 보다 중요하지 않고 그런 주장이 있다면 조용히 집구석에서 평화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반민주적인 경찰들이 짐짓 충고어린 말투로 가증스러운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대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한계를 양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주장을 자율적으로 주장해본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왜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들은 사용자들의 영업을 방해하다가 경찰에 강제로 연행될까? 왜 사람들은 경찰이 수십명을 연행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도 다음날 거리에 나와 자발적으로 닭장차에 올라타고 '나를 연행하라' 며 스스로를 고발할까? 마음속의 울림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옮다고 믿고, 그렇지 아니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을 표현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의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같은 거리에서도 누군가는 우리 모두 미친소를 먹지 않아야 된다고 외치는데 누군가는 재미나게 공연 감상하다가 거리로 나오기만 하면 폭력적으로 연행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해시킬 수도 없다. 정말 불가피하게 거리로 나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자유권을 내던지면서까지 공공을 위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그런 주장을 집에서 소리 높여 평화롭게 외치면 국가는 그것을 들어주었던가? 현직 경찰관인 당신이 경찰이 될 수 있었고 당신이 가정에서 민주적이며 사람답게 살아 가며 당신의 가족 모두가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야만 하는 고귀한 일이 오직 당신이 어느날 고시학원에서 밤낮으로 공부한 경찰 시험 때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집회, 결사, 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하고 그것을 방해할 어떠한 공권력이나 외부 압력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이 나라의 헌법이고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당히 거부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의 마땅한 권리이며 존엄인데다가 그것이 1987년부터 이 나라가 작동한 방식이다. 자신들도 연행될 수 있고 얼마간 자유를 박탈당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계에 지장을 받을 것인데도 왜 거리에 나와 저항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뤘던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이 그러했기 때문이고 누가 이해시켜주지 않아도 그것을 이어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잡아 가라, 잡아 가지 말라고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찰들이 한가롭게 거리점거를 운운할 때 시민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학습하고 그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20년전 항쟁의 그것보다 더한 시대정신을 지닌 시민들이 뭉치고 있는데 이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한번이라도 그런 이유를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것이다. 현직 경찰관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경찰관을 해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설프게 집시법 2개 조항을 들먹이며 가당치도 않는 충고를 늘어 놓기 전에 말이다.

이준기씨에게 띄우는 현직 경찰관의 글
2008/05/29 14:53 2008/05/29 14:53
DrunkenSTAR 이 작성.

나의 투쟁

2008/05/28 15:30 / 생각
몇 달 전부터 내가 사는 아파트는 간판을 바꿔다느라 분주하다. 입주 당시의 아파트 브랜드를 새로운 아파트 브랜드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일을 하는데 입주자대표회의와 조합은 입주민들에게 부당한 동의서를 요구했다. 신규 브랜드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간판 변경과 기타 도색작업 등이 필요한데 이에 필요한 비용을 평수별로 분담금을 부과한 것이다. 이 분담금을 내지 않을시는 소유재산에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협박도 일삼는다. 나는 이런 독소 조항이 있는 동의서를 거부했다. 하지만 주민 80%는 자신들의 재산이 브랜드를 바꿔달아 자산가치가 증대할 것이란 희망으로 동의서에 서명을 했고 서둘러 분담금을 입금하고 있다. 독소 조항도 독소 조항이지만 아파트 간판만 바꾼다고 그 브랜드의 상업적 가치가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 아닐진대 너도나도 포장을 바꾸는데 혈안이다. 누군가는 손쉽게 자기집을 구입했을지는 몰라도 대게의 사람들은 지리한 현실과 꿈 같은 꿈으로 어렵게 자기 집 한칸을 마련한다. 이마저도 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람축에 든다. 그런 집은 브랜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구가 안전하게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갑작스럽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오래도록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서 중요하다. 그러한 공간에 건설회사의 상업적 브랜드는 그 안의 고귀한 삶에 어떠한 간섭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파트가 집이 아니라 상업적 가치의 브랜드화 되면서 집이라는 인간적 의미를 쉽게 팔아 먹어 버린다. 그 집에 제식구가 브랜드와 관계 없이 행복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식은 브랜드로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 브랜드의 개명은 이 아파트를 사고자 하는 다른 수요자에 어필하여 조금이라도 더 높은 가치를 받아 챙기기 위한 수단이란 점에서 간판을 바꾸고 도색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사는 사람의 삶이 윤택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80%의 이런 선량한 상업적 식민들이 있기에 그것을 등에 업은 조합이나 대표회의는 그것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소수자들에게 온갖 악랄한 횡포를 일삼는다. 이권만을 쫒는 조합에는 이성이나 양심, 인간의 영혼따위는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믿는 무식한 폭력만이 존재한다. 나는 걱정이다, 저런 아비와 어미에게서 자란 아이의 장래가 결코 인간적이지 않을 것이기에 두렵다. 이미 이 상업적 세대는 계몽이나 반성이 불가능하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가난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남들이 해놓은 것을 받아 먹으며 기생하며 이권을 챙긴 사회암적 세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을 믿는 사람들이 80% 이며, 우리나라의 법철학은 다수결 중심적이다. 즉, 반대해도 할 수 없다. 다수가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고 다수가 하자고 하면 따를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의 법은 애초에 약자나 소수자를 보호할 의지나 근거가 없는 강자의 철학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하다 보니 80% 정도의 상업적 동의는 법적으로 유의미하다. 법적으로 말이다. 결코 수긍할 수 없는 법적 근거로서 말이다.

나는 이 80%에 주목한다. 이 80%는 우리 사회의 도처에 존재하는 80% 다. 이 80%는 사회전체적으로 약자이면서 미래에 강자가 되고 싶은 헛된 희망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분포와 같다. 제 아이가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것이 안타깝지만, 자신의 아이가 똑똑하다고 믿고 싶고 게다가 MB식 성공까지 보장 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짐짓 현실직시한 양 행동하는 사람들의 분포다. 자신들의 욕망이 아이를 위해서는 인간적인 것이 되는 부모 됨됨이의 왜곡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분포다.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도 이명박의 자사고 정책이나 서열화 따위는 궁극적으로 인정하는, 즉 자신의 아이는 똑똑하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학교가 필요하다고 믿는 이명박 지지자들의 분포다. 이제 이런 80% 와 홀로 수개월동안 대치하고 나니 너무 피곤하다. 이 80%는 분담금을 내지 않는 소수가 자신들의 분담금으로 도색한 브랜드의 가치를 분담 없이 취하려 한다고 난리인 분포다. 그래서 법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 선다. 법은 어차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종사하는 교양 없는 자본 식민들의 편에서 이해 못할 용어들을 쏟아 낼 것이다. 우리 사회를 좀 더 신중히 대하려 해도 그런 이성이 받아 들여 질 수 있는 곳인지 매우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방금 전 강남경찰서로 어제 촛불문화제에서 강제연행된 후배를 면회 갔다 왔다. 면회를 거부 당했지만, 먼저 면회한 사람들의 전언으로는 '48시간 자고 나올테니 걱정말라' 는 것이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반대해서 혼자서만 그거 안먹겠다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라 생각하는 몰지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우리 사회의 80%는 20%의 희생으로 나중에 생길 이권을 취하거나 이롭게 바뀐 사회현상을 공기처럼 거저 마실 사람들이다. 나는 이 후배와 또 강제로 자발적으로 연행당한 사람들의 활동만큼 동참을 하지 못했고, 그런 부실한 오지랖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거저 마실 사람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최소한 이 사회를 같이 살아 갈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하지 못하면 짐짓 양식있는 양 행동하며 브랜드만 갈아 치우는 일에 열중인 이명박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교양으로 아이를 키워 세상으로 내보내면 내 욕망의 성공신화가 써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기는 죽어도 싫다.
2008/05/28 15:30 2008/05/28 15:30
DrunkenSTAR 이 작성.

아침이슬

2008/05/27 13:08 / 생각

이렇게 된 이상,
다시 아침이슬이다.
아가야, 이제 아빠도 촛불을 들어야 겠다.
아가야, 울지마, 아침에 새 세상과 함께 돌아 올테니..

2008/05/27 13:08 2008/05/27 13:08
DrunkenSTAR 이 작성.

류근일의 두려움

2008/05/27 12:49 / 동물

류근일은 걱정스럽다. 그동안 '대한민국 진영' 이 광우병 괴담으로 반미 수준이 아닌 그동안 온갖 패악적 문필로 막아 왔던 남한이 미국의 괴뢰였다는 사실이 들통 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것 같다. 보수주의자들은 옳은 말을 하는 지식인과 거리의 선량한 시민들을 빨갱이와 폭도로 몰아 매장시키는 데는 익숙했지만, 이명박이 실용주의로 넘나드는 이념의 줄넘기에 발맞추기에는 이미 너무 늙어 버렸다는 것을 그들의 지지 진영으로 부터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더 조급증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고 설마 입에 담아 공포스러운 민중혁명이라도 일어 나는 날엔 망명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강부자도 제가 착취할 땅을 잃으면 난민에 불과한 것을. 이제는 짐짓 이명박을 훈계하고 나서지만, 이명박의 사상은 조선일보도 이익이 되어야 청와대로 불러 꼬리곰탕을 먹을 수 있는 스탠스이니 도무지 주적 개념이 없는 듯 한 행태가 답답할 것이다. 도대체 청와대는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그나마 경찰추산 촛불 집회 참가자가 줄어 드는 것을 보고 받으며 '거봐 쎄게 나가면 되는 거야' 라며 케잌을 커피에 찍어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게 아니면 이런 시급한 시국에 한가롭게 중국 마실이나 나갈 수 있는 것인지. 류근일은 행여 후진타오의 해남도 별장으로 초대라도 받았으면 어찌할 뻔 했는지 가슴을 쓸어 내렸을까? 이번 투쟁에는 다행이 화염병도 깨진 보도블럭도 없다. 하지만 류근일 따위가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동안은 최소한 '독재타도' 라는 구호는 듣지 못했는데, 이제 구호의 끝에서 더 이상 구호가 먹히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화염병도 등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벌써 부터 경찰과의 충돌을 예사로 알고 스스로 잡아 가라며 닭장차에 매달리는 희안한 일까지 있다니 더욱 걱정이다.

그렇다. 이번 투쟁은 양상이 다르다. 어차피 정부는 고시할 것이고 쇠고기를 처먹어라 할 것이다. 남한이 미국의 괴뢰였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해 왔던 지난 친미독재정권들의 스마트함이 밥 먹여주냐며 걷어 차 버린 이명박 정권의 실용주의는 위태롭다. 류근일이 보기에도 그것은 좌우 진영이 아니라 '대한민국 진영' 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정권이 시민에게 지는 척이라도 해왔던 것이 지난 잃어 버린 10년인데다가 아직도 민주화의 관성을 간직한 386 이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곧 유권자가 될 10대들까지, 그것이 아무리 괴담이고 맹목적일지라도, 거리에서 MB탄핵을 외치며 각성하고 있는 사태를 목도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일 것이다. 겨우 5년 집권으로 끝날 역사가 100일지난 정권에게서 청사진으로 비춰지는 데다가 이 투쟁이 행여 시민들의 승리로, 행여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날에는 조중동도 같이 몰락할 것만 같은 참담한 분위기는 더더욱 혹독하다. 류근일으로서는 살아 남기 위해 더 악랄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08/05/27 12:49 2008/05/27 12:49
DrunkenSTAR 이 작성.

김장훈의 실용주의

2008/05/20 01:26 / 인물

17일 촛불집회에 김장훈이 참가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놀랐었다. 이명박 정부 축하사절단도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온 것일까? 몇달만에 이명박 정부를 축하하던 자가 가졌던 신의의 가치가 들불같은 촛불과 함성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버라이어티 같은 인식의 전환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무대만 있다면 어디서든지 노래 부르고 그의 전매특허인 발차기를 할 수 있다는 강변이야 말로 그가 이 나라를 사랑하고 이 사회에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어떤 자세의 크기만큼이나 해로운 것이다. 어쨌든 그가 이명박 정권의 탄생을 축하하며 힘찬 발차기를 내질렀던 여의도는 그냥 무대도 아니며 그 무대를 보는 사람들은 그 발차기가 이명박은 지지하되 정책 따위는 지지 하지 않거나 또 어떤 맥락이 다르거나 하는 복잡한 제단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이명박정부는 지지하지 않지만 취임식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만으로 박수 정도는 몰래 쳐줄 용의가 있는 반동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장훈 본인도 그랬을까? 그러니까 모 그런 역설을 발차기로 승화시킨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뻔뻔스럽게도 이명박 정부가 싸질러 놓은 쇠고기똥을 주어 담으려는 촛불집회에 나와 취임식에서도 등장한 발차기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 모르게 바쁜 스케줄을 축내며 눈물 흘리고 후회하고 반성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민간인들이야 환호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 용기 있게 나아가 자유발언 따위를 하지 않으면 그 고독한 눈물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겠지만 김장훈이야 너무 다르지 않은가. 자신의 착한 일들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이 다반사 인데 취임식의 발차기와 미친소 너나 먹어 발차기가 개별적 인식을 가진 독립적인 발차기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맥락을 제단하고 인식을 고차원적으로 발현시키면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부류들이 지금껏 한국사회에 미친 해로움은 비단 멀리 찾을 일도 아니다. 인식인지 사상인지 노동인지 비즈니스프랜들리 인지 정계진출인지 사리사욕인지 이런 것들을 한번에 섞어 버린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같은 이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철학적 지식을 버라이어티하게 설교할 줄은 알지만 정작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철학적 고민이 얕은 김용옥 같은 지식인도 있다. 그러하다 보니 어떤 때는 새만금에 카지노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새만금 사업 도로 물리라고 포크레인 앞에서 피켓을 들 수 있는 것이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그들의 언어를 해독치 못하는 무식한 우리의 뇌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도 이런 부류들이 다행스러워 하는 것은 그들이 아무렇게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도록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언어를 싸질러놓아도 언론이나 미디어가 그것을 번역하여 똑똑치 못한 우리들의 뇌속에 주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대라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건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사람들이 그때 들은 노래를 추억과 함께 입속에서 오래도록 되새김질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의 녹음된 CD 만으로도 족하다. 굳이 똑똑치 못한 사람들의 뇌와 입속까지 경련을 일으키게 몸소 나와주실 일은 필요치 않다. 김장훈이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무대에 나오기 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 생각이 무대에서 노래도 되고 발차기도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그의 해로움은 이용득과 김용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쇠고기 협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반대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반대하지 않는다? 사안데 따라 다른 싸질름, 그리고 번역은 버라이어티나 언론이, 이런식의 패악질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다. 그가 마치 CD 의 오토리버스처럼 펼치는 착한 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아' 라고 과격하게, 때로는 아주 순진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각인 시키는 것만 같아 아주 불편하다. 이런 뻔뻔함 어디서 많이 본 아우라 아닌가? 참으로 실용주의적이다.

2008/05/20 01:26 2008/05/20 01:26
DrunkenSTAR 이 작성.

어떤 국가

2008/05/15 18:41 / 생각
촛불집회를 다녀온 수많은 시민들이 스스로를 고발하고 나섰다. 민주공화국인 나라에서는 어떤 표현에 대해 국가기관에 자수하고 스스로 자유를 내던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배운 민주주의는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의 말을 막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다. 이것은 안드로메다의 해괴한 정치 이념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이라고 믿고 있는 나라에서는 최소한 그런 이성과 양심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광우병, 미국산쇠고기 문제, 그래서 죽고 사는 것, 중요하다. 죽고 사는 건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이라 믿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죽고 사는 문제가 '소통' 을 못해 생긴 것이라며 3일동안 정부 각 부처를 돌며 강조했다. 그리하여 소통의 관용을 이렇게 실천하고 있다. '촛불집회 참가자 사법처리', 'MBC PD 수첩 고소', 'EBS 지식e 17년후 편 방송금지', '고3 학생 촛불집회 배후추궁', 이명박정부는 CEO 라면 나라 경제를 살릴 것이란 전혀 과학적이지 않는 근거로 탄생한 정권이다. 수많은 CEO 들이 사익을 위해 비자금을 만들고 세금을 포탈하며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잉여를 벽에 걸어두는 나라에서 'CEO 라면' 이란 정권 탄생의 근거가 통했다는 것이 그야말로 안드로메다적이다. 그렇다, 정작 기업에서 기업조직에서 이유 없이 추궁 당하고 근거 없이 해고되며 사장, 부장 꼴보기 싫어 매일 아침 때려치고 싶은 욕망이 굴뚝 같은 근로자들조차 'CEO 라면' 이란 이유를 믿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궁극의 초현실주의다.

CEO 는 CEO 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거창하게 말할 수는 있어도 정작 민주주의를 믿지 않는다. 대신에 CEO는 민주주의란 이익을 내는데 매우 거추장스러운 시스템이고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기업에는 홍보 라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라면 다양한 표현, 제할말 다하는 표현, 어떤 표현 등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통을 위한 길이 따로 필요 없다. 기업의 홍보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제할말 다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라 믿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외계의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명목으로 닦여진 일방통행일 뿐이다. 이러한 일방통행에는 매력적인 거짓말이 99%다. 왜냐하면 기업의 홍보는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미래의 이익에 대해서 얘기하기 때문이며, 그 외계의 사람들은 민주주의적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매력적인 것에 돈을 쓸 준비가 된 소비자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게의 CEO 는 이러한 일방통행을 소통이라 믿고 있다. 게다가 CEO 는 소비자를 민주적이며 주체적인 어떤 개인으로 보는 것이야 말로 이익이 미덕인 기업을 운영할 자격이 없는 이상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CEO 마인드를 설파하고 CEO 의 능력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근거는 그야말로 기업의 홍보와 다를 것이 없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라면 소통이란 선전을 굳이 국가가 나서서 할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는 홍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가지가지의 표현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광우병, 그래서 죽고 사는 문제,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소통으로 불리워질 때 민주주의는 없는 것이다. 소통을 국가가 나서서 선전할 때 국민은 국민이 아니라 소비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정작 살았으나 죽은 것이다.
2008/05/15 18:41 2008/05/15 18:41
DrunkenSTAR 이 작성.

협상 테이블에서 오륀쥐 발음으로 협상은 잘 했는데 정작 문서 해독을 위한 번역은 실수?

영어몰입식 교육과 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기성세대의 무능함을 보라, 따라서 10대! 너희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영어몰입식 교육과 사교육이 필요한 거다. 쇠고기 협상은 그저그런 협상이 아니라 여러가지 정치적이고 과학적인 합리까지 생각하고 고려한 교훈적인 내용을 보여주기 위한 거다. 그런데 정작 이 분들은 문법과 독해의 달인 아니던가? 그러니까 발음이 오륀쥐가 아니었으니까 몰입식 교육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서보다는 말로 천냥 빚도 갚고 그러니까. 문서에 없어도 말로 안한다면 안한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 이토록 심오한 2MB 정권의 혜안.
2008/05/13 14:41 2008/05/13 14:41
DrunkenSTAR 이 작성.

이명박 슈퍼마켓

2008/05/09 16:20 / 생각

학교 앞 슈퍼마켓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먹고 초등학생이 죽을 확률은 얼마일까? 확률적으로 학교 앞 슈퍼마켓이 권리금 받고 빠져 버리기 전에 초등학생이 죽을 확률은 로또 1등 맞아 돈 찾아 나오다가 벼락 맞을 확률과 같거나 낮을 듯.. 따라서 불량식품을 팔아 이익을 얻어야 하며 정부는 확률적으로 말이 안되기 때문에 불량식품 판매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 이러한 규제는 실용적이지 못하다. 더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확률적으로 거의 발생 불가능한 것을 두고 이익을 제한하니 말이다. 사서 먹을지 말지, 먹고 죽을지 말지는 초등학생 몫.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정부가 아니라 상점이다. 그렇지! 그는 CEO 였다.

2008/05/09 16:20 2008/05/09 16:20
DrunkenSTAR 이 작성.

꿍꿍이속

2008/05/07 05:15 / 생각
왜일까?
이렇게 변명을 하는 이유가?

강재섭대표 "광우병이 발견된다면 기왕 체결한 위생조건을 고치도록 재협상할 수 있다"
안상수원내대표 "광우병 위험이 발생하면 재협상도 가능하다는 답변을 정부로부터 받아냈다"
이한구정책위의장 "우리가 검역을 중단하는 것은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을 광우병위험통제국에서 해제할 경우에 한해서다"

어쨌든 누군가가 광우병에 걸려서 뒈져야 재협상인지 하는 정치적 씨부렁을 하겠다는 얘기네.


돈과 권력에 그렇게 밝은 사람들이 설마 국민 건강만 생각하고 쇠고기 수입하겠나, 미국하고 지들하고 무슨 속내가 있는거지. 그게 뭐겠네... 앞으로 다가올 엄청난 것 때문이겠지.
2008/05/07 05:15 2008/05/07 05:15
DrunkenSTAR 이 작성.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긴다. 정치적 발언으로는 그렇다. 정치적이란 범주는 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으로 요약될 수는 없다. 정치는 사람간의 소통을 다스리는 일이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도 생각을 발언하고 실천하는 사람의 설득력에 따라 다른 사람을 그 의도대로 다스리곤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자기의 말에 10명이 동의하면 무슨 일이든 하기 편하다. 10명이 리더쉽과 권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은 생활 속의 권력에서 더 많은 수 더하기 법으로 정해 놓은 몇가지 규칙만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물론 이것을 쟁취하기 위한 선거판의 에너지는 인간의 의지 중 전쟁 다음이 아닐까 한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섬긴다는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데 왜 국민들은 촛불집회며 탄핵서명 운동까지 주어 담기 힘들 일을 벌이며 대드는 것일까? 게다가 50% 이상의 국민이 동의한 명실상부한 권력을 말이다.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가 보자, 주위에 10명을 객관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주어 담지 못하는 발언들은 일련의 열공모드와 정보 탐색으로 정리된 합리에 의한 것이 었을 때 다른 10명으로 부터 동의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화법도 중요하고 태도도 중요하지만 다른 10명으로 부터 동의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는 덜 생각하고 덜 정리된 발언과 실천적 삶이 도무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동의를 얻을 수 없었을 뿐이다. 매우 합리적인 상태를 끌고 갈 수 없을 때 우리는 대게 나이를 들먹이고 고향을 들이대고 더 나은 주머니 사정을 토대로 유흥의 길로 유혹하게 된다. 어쨌든 동의는 시켜야 되니까.

이명박 정부는 지난 선거에서 어쨌든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 경제를 살리고 잘 살게해주겠다는 정치적 발언으로 말이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더 이성적이며 합리화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선거는 합리적인 것 보다는 에너지를 원한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이해하는 논리적 시간은 먹고 사는 일상에서 빼내어 누리는 어떤 사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후끈한 에너지가 넘치는 한마디 구호만있다면 어떤 비합리도 용서할 수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탄생했다. 경제를 살릴 수도 못사는 사람을 구원할 수도 없는 비합리성에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찾아 낼 수 있는 이상한 정권으로 출범했고 사람들은 이를 기꺼이 축복해주었다. 이은하의 대운하송, 김장훈의 발차기, 송윤아의 시낭송 과 더불어 말이다.

이런 축복이 얼마나 되었다고, 1만명 촛불집회와 1백만명 온라인 탄핵서명 따위에 귀를 귀울이겠는가. 점점 파고 들어가 보니 1만명 집회에 60%가 중고생이었고, 1백만명 탄핵서명 발의 또한 고등학생이 했다질 않나, 정치적 발언과 경찰의 엄포를 적절히 섞고 미국에서 때마침 지원사격을 해주는대다가 그동안 껄끄러웠던 조선일보마저도 괴담 운운하며 몰아 가고 있으니 애들 부침에 너무 나선것은 아닌지 수위 조절을 해도 될 싸움으로 보일 것이다. 투표권도 없고 잉여생산력도 없는 것들이 절반이상 나섰다니 웃기고 자빠질 상황인터다. 조갑제의 말대로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그들의 꼰대들이 용돈으로 통제를 해도 될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나머지 사람들은 으례 그랬듯 배후 세력에 조종된 좌파 빨갱이들로 몰아 세우고 집시법으로 몇놈 잡아 넣으면 온라인에서 한두 사람씩 '반성' 이나 '후폭풍' 따위를 거들먹거리며 서로 치고 받다가 '미국산 쇠고기 먹고 보니 싸고 괜찮네' 하며 감사해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거리에 나온 못살고 야자 빼먹으며 앞으로 경쟁력 떨어질 학생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들의 구호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비합리적인 노인네와 그들이 섬길 국민은 따로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 따라서 예전에 흑인과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었던 코카서스 미국인들의 이성처럼 10대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이야 말로 합리적인 민주적 결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통일이 되면 안되고 행여 잘못되어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출신에게 민주주의적인 투표권을 주어선 안된다는 생각도 이들에겐 합목적적이다. 이들에겐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어서는 안되는 부류가 따로 있다. 이들의 권력과 권력이 지탱해주는 이들의 자본에 부적격한 낙오된 부류들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기적처럼 탄핵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반성해도 절대 잃을 것은 없다. 그들에게 권력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어떤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예나 존경 따위는 더더욱 아니며 누구나 잘살게 하기 위한 호혜평등의 인간성의 정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본을 좀 더 축적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가장 유리한 도구로서 권력이 필요한 것 뿐이다. 애초에 미국산 쇠고기는 국민들이 싸게 사먹을 것이지 돈 있는 정부 관료와 한나라당 인사들이 함께 먹을 고기는 아닌 것이다. 큰 생색 내는 것처럼 미국 쇠고기 자본가들에게 시장 내어 주고 미국 금융시장에 눈치 않보고 호기 좋게 투자해서 돈 좀 만질 수 있으면 이들이 섬기는 부류의 국민들에게 환영 받는 것이다. 광우병 따위로 죽고 사는 문제 또한 시장의 논리로 해결하면 되는 문제다. 이런 시장 논리야 뻔하다. 없는 놈은 먹고 나중에 죽는 논리. 이 정부가 들어야 할 국민의 목소리는 1억짜리 일본산 쇠고기와 마침 가격이 떨어진 미국내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는 부자들의 얘기다.

이들의 관심은 쇠고기와 광우병이 아니다. 미국적 세계화가 가져올 금융의 한결 나은 변화를 예고한 한미FTA 가 그들의 목표다. 돈 냄새는 여기서 나는 것이다. 광우병은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게는 과학적이라는 오래 걸릴 단서를 달아 두면 절대로 그들이 갚을 일이 없는 외상값 같은 것이다. 돈에 밝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발동한 한미FTA 를 해치면서 까지 외상값을 갚을 부자는 없다. 미국산 쇠고기는 착취해야 할 부류에게 던져주는 당근이다. 돈을 더 찍어 내지 못한다면 못사는 사람들을 모아 그나마 푼돈이라도 글어야 할 판에서 싼 미국산 쇠고기는 그야말로 맛있는 당근 아니겠는가. 그걸 안먹겠다니.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미국산 쇠고기를 찬양할 것이다. 비합리적인 정권이 들어야 할 국민의 목소리는 명확하다. 돈에 있어서는 명확한 부자들이다. 비합리적인 정권을 선거에서 미친 듯이 뽑아 준 비합리적인 부류들의 목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 어쨌든 궁극에는 마지못해 먹을 수 밖에 없다는 비합리적인 합리화를 감행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오래 걸리는 과학이나 설득하고 이해해야 하는 합리보다 폭발적인 분노가 필요한 것이다.

2008/05/06 02:05 2008/05/06 02:05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