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희망

2004/08/14 15:22 / 기억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물빠진 뻘밭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감은 눈 앞에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 온다.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서랍 속의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한없이 비운 머릿속으로

다시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사람의 냉냉한 침묵과

옛날의 病에 대한 희미한 기억처럼

희미하고 불투명하게 와서

빈 머릿속에 불을 켠다.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핏줄을 열어, 피를 쏟고

빈 핏줄에 도는 박하향처럼 환한

현기증으로,

환멸로,

굶은 저녁 밥냄새로,

뭉크 畵集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

카프카의 K처럼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장석주]





건방진 희망이 대지를 난무하는 동안 몸은 영혼을 잃고 기적소리에도 쉬 흔들린다.

나는 지금이나 이전에도 세상을 의심하며 인생다운 인생을 갈망했다.

부조리와 희망의 공존이 불편한줄도 모르고 끝끝내 외로워하였고 비극적 디오니소스를 동경했다.

내 영혼은 바닥을 쳤다.

이제 다시 몸을 떠나는 일이 없다며 겨드랑이를 통해 스며든다.



비가왔고,

기형도라 쓰여진 간판이 젖을때

요제프K 라는 소년이 죽었다.

건방진 희망으로 날씨가 오락가락 하는,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기형도]

소년의 눈에서 내 영혼을 본다.

겨드랑이를 통해 들어온 놈은 자꾸만 나 아닌 나를 만들어간다.

정체성을 잃어 버리는 것일까?



모호하다.

생을 도모하는 내 희망은 그저 건방지기만 하다.



결국은, 희망이란 무엇이고 절망이란 무엇인가?



눈을 뜨지 마라 소년아~ 세상살이에 넌덜머리 난 나에게 세상에 눈을 뜨면 온통 해결해야할 것들 투성일 뿐이다. 감은 눈 그저 모호하여도 좋다. 건방지게 희망을 얘기하러 눈을 뜨지 마라...
2004/08/14 15:22 2004/08/14 15:22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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