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기 확신은 사적인 곳 보다는 공적인 곳에서 독선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나에게 있어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신념과 경험으로 나는 스스로 합리하고 남을 통제하려는 경향 또한 다분하다. 다만, 그가 결과는 원했던 것이 아니어도 그것을 끌어 내는 논리가 원더풀할 경우, 나의 합리는 여지 없이 깨진다. 그 파괴엔 미련도 애착도 없이 그저 통쾌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언제던가?
귓볼 뒤에 멍울이 잡혔다. 언제 부터 자리 잡은 건지 모르겠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음주단속을 하면 알코올 성분이 나올 것만 같은 긴장감 따위는 견딜만 하다. 인간적으로는 어떻게든 손 붙잡고 가려고 했다. 젠장, 왜냐하면 친정회사니까, 일면식은 그리 없지만 냉정보다는 열정으로 뭐를 춤추게 하는 교과서적 타이틀의 감흥처럼 끈끈한 맛을 살리고 싶은 끄나불은 나의 자기확신도 아니고 합리도 아니며 그(들)의 논리도 이성도 아니었다.
태도, 이것은 자세와도 동향인, 이것엔 미움이 있다. 태도에 따라 미움은 자석처럼 들러 붙어 다닌다. 그러니 소름끼칠만도 하다. 요즘 세상이 태도 보다는 다른 것에 치중한다 하더라도 막상 이 태도 앞에서 우리는 그(들)가 살아온 인생의 요약을 보곤 한다. 태도가 없으면 지식이 있더라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허술하게 살았는지 자신에게 얼마나 관대했길래, 하지만 측은함 따위는 들지 않는다. 태도는 미움으로 건너 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내쳤다.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을 두지 못할 만큼 엉망인 일일일을 본다. 너무 터무니 없다보니 축처진 장은 꼬일대로 꼬였는데 30대초반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바뻐서 좋았다며 객기 부리던 시절처럼 바쁘긴 10년전만 못지 않아서 초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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