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게다가 너무 오래된 스페인 내전을 때때로 기억해내는 이유는 스페인 내전이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의 전쟁이어서가 아니라 로버트카파의 한 장의 사진 때문일 것이다. 풀썩 쓰러져 죽기 직전의 공화국 병사 말이다.(그 병사는 분명 죽었다, 그 병사의 이름은 '페데레코 가르시아' 이다.) 이 사진은 너무 많이 배포된데다가 전쟁이 하나의 이미지와 영상이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한다. 게다가 불경스럽게도 이 사진 연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더러 남는다. 하지만 최초로 사진에 찍혔던 크림전쟁 당시 로저 펜튼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거대한 상자 4개를 짜맞추고 전쟁 현장에서 인화를 해야만 했던 시절처럼 '인정된 연출' 은 없었던 것이 로버터카파의 이 사진에 정설이 된 이유는 스페인 내전이 사진가들에게 간단한 조치로 필름을 되감을 수 있게 한 35미리 라이카 카메라가 보급되어 그 진가를 발휘한 최초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작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로베르 두아노의 '파리 시청앞에서의 키스' 는 파리를 사랑의 도시로 묘사하기 위해 남녀를 미리 섭외하여 카메라가 설치된 곳에서 키스를 하도록 연출했다. 이 정도는 애교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조 로젠탈의 '수리바치산의 국기게양(이오지마섬의 국기게양)' 은 사진사가 찍고 싶은 스팩타클을 연출한 악랄한 포착의 전형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퓰리쳐상의 대표격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사진은 연출되어선 안되는 것일까? 포토샵으로 칼라를 덧칠하고 콘트라스트를 대비하는 행위가 또 하나의 포착이 된 시대에 사진의 연출이란 무엇인가, 어쨌든 사진에는 구성이 존재하고 구성은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넣느냐는 문제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여기엔 양심이 필요하다.
연출이나 조작 없이 전쟁을 찍을 수 없었던 시절의 로저 펜튼에게 '카메라 모랄' 이 있었을리 없다. 오늘날에도 어떤 장면을 찍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종종 연출을 가능케 하고 이것은 기록이 아니라 시각예술이라는 미덕이 된다. 문제는 사진의 조작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사체에 충분히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라 했던 카파의 말을 동어 반복하여 조작은 어떤 두려움이나 어떤 연민에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포토와 포토 저널리즘의 극복될 수 없는 차이와 같다. 포토는 기술과 시각예술의 정밀한 조합인데 반해 포토 저널리즘은 '기록하기 위해 떠나는 용기 있는 결단' 같은 것이다. 어차피 사진이 가진 포착의 형태는 피사체의 앞에서 다르지 않다. 다만 용기 있는 결단으로 있어야 만 하는 장소로 떠나 그곳에 결국 있었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사실 이 차이는 저널리즘에서 매우 크다.) 따라서 포토의 그것엔 있어야 만 하는 장소가 아닌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장소의 풍경과 아름다운 색깔만이 깨진 빗살무늬 토기처럼 흩어져 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둘 중 하나의 취미에 반응할 것을 종용한다. 사실 저널리즘과는 다르게 포토에는 이런 미덕에만 충실해도 사람들은 흥분하지 않는다. 포토 저널리즘이 어떤 떠남의 결단이란 점은 가장 극적인 역사적 주제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대체로 포토 저널리즘의 어떤 충격은 알림과 계몽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나 인류적 이동과 같은 가장 극적인 파노라마가 일어나는 곳으로 떠나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는 지도 모른다.
인류가 서로를 치열하게 파괴하는 전쟁이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삶의 현장에서 이주해야만 하는 가혹한 현장은 언제나 교훈적이고 때로 장엄하기 까지 하다. 그중 전쟁을 기록한 포토 저널리즘에는 전쟁의 공포와 '볼만한 스팩타클' 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전쟁이 언덕 위에 풀썩 쓰러지는 공화국 병사처럼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전쟁이나 피사체에 한발 더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물론 공화국 병사의 사진이 오늘날 바그다드 하늘에 뿌려지는 대공포의 섬광을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 내는 CNN 의 영상보다 '볼만한 스팩타클' 을 제공해주진 않지만 우리는 스페인 내전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침공과 같은 대인류적 파괴에 대해 영상 이상의 어떤 것으로 접근하는 것을 꺼린다. 이것은 두려움으로 이뤄내는 어떤 연민마저도 합리적으로 거세하는 감정의 거리이며 미국에 협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먼 어느 고장의 사정일 뿐이라는 내제적 안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량과 물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휘둥그런 눈과 파리와 함께 널부러진 플라스틱 그릇에 투영되는 감정, 미개한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불쌍한 일들이란, 것과 같은 부류인 셈이다.(그곳에 패리스 힐튼이나 안젤리나 졸리가 콘트라스트로 대비되는 포토는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어도 아름다움과 추함의 미덕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반계몽적 감정에선 공화국 병사의 죽음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공화국 정부군과 반란군을 당사자로한 전세계적인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충돌로 규정하거나 피카소의 '게르니카' 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로 조응되는 탐구와 연결되지 못한다.
오늘날 포토 저널리즘의 문제는 더 이상 사진 밖으로 고통이 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민주화가 한창이던 당시 이한열 열사의 피격 사진은 거대한 고통의 전이를 일으켰다. 하지만 한미FTA 를 반대하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의 영상은 좀 처럼 볼 수 없는 분신 자체의 스펙타클에서 분신의 이유였던 反한미FTA 로 전진하지 않은 체 탐구가 제거된 통조림 안에서 짧은 유효기간을 가질 뿐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가 수많은 포토 저널리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는 것으로 그 모두를 함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양심적 사진가들과 포토 저널리스트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 익숙해지기 위함이나 추상적인 안도감을 견고히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비되어야 하는 사회는 다만 아직 그 사진의 피사체가 되지 않은 사회일 뿐이다. 하지만 사진은 그것을 목격한 사진가가 의도한 어떤 양심이나 도덕을 알리는데 있어서 언제나 관람객과 적당한 거리를 가진다는 단점 때문에 거의 대부분 그 사진의 고통이나 양심이 왜곡된다. 이러한 거리의 왜곡은 페데레코 가르시아나 허세욱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아들, 남편 그리고 친구 였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연을 간과하면서 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지극 당연함에서 조차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 장의 사진을 통한 교훈이나 전진하는 역사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신기루인 것이다. 이쯤되면 포토 저널리즘은 점점 더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더 장관인 광경에 종사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어떠한 현상에도 그것의 원인이나 이유에 대해 탐구하지 않는, 지배하기 간편한 '통치된 종족' 으로 취급 받게 되는 것이다.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젊은이의 다수가 사진가인 세상이다. 모두가 무언가를 기록한다고 하지만 대체로 그들의 기준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아름다움은 추함에서도 일어나는 감정이다.)자체, 또는 아름다운 빛을 쫓는다. 따라서 이들의 사진은 시각예술의 미덕에서 탄생한다. 포착을 통해 주제가 동반되지 주제를 위해 포착이 집합되진 않는다. 주제를 위해 포착을 집합하는 것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기 때문에 긴 호흡이 필요하지만 시각예술적인 포착은 디지털처럼 쉽게 삭제,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호흡이 짧다. 이 때문에 기술적인 것에 집착하기 마련이고 사진에 주제나 제목 그도 아니면 피사체의 이름 대신에 촬영장비, F넘버, ISO, 셔터스피드 따위를 기록하게 된다. 오늘날 만인의 사진가들은 목격한 피사체와 소통하는 대신 카메라의 뷰파인더와 카메라에 내장된 첨단 컴퓨터 장치와 인터페이스를 가질 뿐 이다. 때문에 로버트카파의 양심이나 메시지를 탐구하진 않고 카파를 그저 신화나 영웅쯤으로, 한번쯤 봐야 하는 스팩타클한 사진기술로 생각하고 마는 왜곡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포토 저널리즘에 복무할 필요는 없지만 피사체에 슛(Shot)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한 법이다. 게다가 배포가 용이한 오늘날의 시대에는 더욱 더 소통의 방법과 연민의 전이를 준비해야 하는 법이다. 이는 무명씨를 찍고 장비의 내역을 설파하는 사진의 기술에서 무명씨를 알아 내고 피사체의 이름을 부여 하는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기술과 시각예술과 기록이 아무렇게나 섞여 배설된 주문이 아닌 피사체 그대로의 이름 말이다. '허세욱 2007년 4월1일' 이런 식으로 소통이 시작되는 '각성된 사진' 으로 부터 우리 사회의 인식은 변하기 마련이다. 자본으로 부터 개발되는 사회가 아닌 책임과 연민으로 얽혀 인간으로부터 변화하는 사회로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안상수 선생의 'one eye' 는 사뭇 탐구할 만 하다. http://www.ssah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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