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패션문화

2007/05/11 16:41 / 생각

제2회 입양의 날 행사가 코엑스에서 열렸다. 지난 10년간 80여명 아이들의 대리모를 해오신 작은 이모가 표창장을 받으신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정체성을 찾거나 생부모를 찾을 때 제일 먼저 연락해 오는 곳이 대리모라던데, 그걸 다 어떻게 감당하려 하냐며 핀잔을 놓던 기억이 난다. 독신 입양에 대한 구조적 담론에 가열찼던 시간은 많았으나 몸으로 살아 보이시던 작은 이모의 이야기는 잊고 있었다. 버려지는 아이가 없어야 겠지만, 아이는 버려지고 누군가 그들을 돌봐야 한다. 버려진 아이를 사회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이견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모도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악랄한 리플은 아무런 고민도 없고 정리도 안되는 인간의 퀄리티 쯤으로 생각하겠다. 작은 이모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선배인 고찬수 PD 가 시트콤 등으로 외도를 하다가 다시 그 프로그램을 맡았다고 한다. 선배는 기부문화에 고민이 많다. 물론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시쳇말로 죽이 맞는 단체나 재단을 줄세우고 관심을 주목시키기 위한 강력한 MC 를 섭외하는 고단한 일은 기부라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선배의 얘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요즘 30대 독신 커리어 우먼들 사이에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유니세프나 월드비전을 통해 직접 기부하고 자신이 도움을 주고 있는 아이들과 소식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헌데, 자기가 기부하고 있다는 걸 왜 그렇게 알리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홍보대사 인가? 어느 자동차 광고를 통해 세계 각지에 17명인가 자식을 두고 있다는 차인표, 신애라 부부의 감동을 찍어 바르고 안젤리나 졸리의 심심치 않은 입양소식과 이에 고무된 헐리우드 스타들의 시너지 효과까지 매스컴을 타고 전해 지는 것을 보면 이것도 패션이구나 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회의 저명 인사, 아니 사회의 저명적 가치나 레벨을 추구하려는 일종의 분열처럼 보인다. 기부라는 것은 대체로 사회적인 것이고 마땅이 그러한 가치체계에 준해야 개인적 만족 벽돌도 도미노처럼 엎어지는 것으로 보는 엄숙함을 비판하기에 앞서, 대중영합적인 기부는 이것이 완전히 반대로 되어 있다. 기부도 개인 만족, 타인과의 비교, 그러므로 해서 더 우월적인 것으로 갈아 입고 갈아 타는 패션주의가 되가고 있다. 어떻게 자기가 기부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아이보다 친구가 기부 중인 시에라리온의 아이가 더 이쁘다며 바꿔 달라는 저질스러운 스탠스를 취할 수 있는가, 감동을 샤넬로 찍어 바르고 기부도 상품으로 탈바꿈시키는 놀라운 천박함을 보여준다. 기부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종의 예의일 뿐, 공동체적 관심이며 사회적 문제이긴 하지만 형평성과 계급에 대한 문제라는 점, 사심의 개입이 적기를 바라는 일종의 사회적 순수성이라는 점 등을 들어서 뭐하나, 시들해지면 에스케이투로 바꿔 바르면 그만인데... 이건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이제 제발 말쑥한 상품이 은폐하고 있는 사회적 노력과 착취의 이면도 바라 볼 줄 알길 바란다. 어설픈 패미니즘으로 무작정 감싸지들 말고...

2007/05/11 16:41 2007/05/11 16:41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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