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2006/08/29 00:44 / 사진

어느 고장에 닿았을 때, 그 고장은 아무것도 스스로 내비치지 않습니다. 그 고장이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얘기들을 흔하디 흔한 괭이밥을 통해서도 들려주지 않습니다. 올해만 벌써 두번째 방문인데도 제주도는 낯설은 빛과 바람과 구름만을 좌판에 펼쳐 놓습니다. 시간을 멈춘 노인이 순하디 순한 양치기 개와 나란히 앉아 빛과 바람의 틈에서 소주를 마십니다. 나는 늙어 가고 있습니다. 루게릭 병에 걸린 김영갑님이 1년전 세상을 떠나며 남긴 두모악 갤러리로 가는 외진 동네, 중산간에는 사납게 비가 옵니다. 늙고 시든 왼쪽손을 핑게 삼으려 해도 셔터는 경거망동하고 뷰파인더는 더 이상 간극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편하게 찍으려 했던 자세가 화근이었나 봅니다. 외로움이 더는 깨닫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 모든 것이 불편해집니다. 들판에 서 봤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있을까, 언제쯤 저 빛이 행복해지는 시간에 셔터를 누를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서 있어야 이곳에서 사연을 가진 모든 것들과 같은 존재로 바람을 맞으며 조잘거릴 수 있을까, 들판에 서 봅니다.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그 풍경에 반해 그 너머에 항상 소홀했던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흔하디 흔해 지난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섬으로의 착지가 내내 설레이기만 했었던 이방인의 호기심 그대로였습니다. 그저 조금 불편한 마음, 풀리지 않는 도시에서의 일과 이제는 차분한 어떤 추억들이 흐트러짐 없는 전진의 동력이었습니다. 경이로움 없는 삶과 도시의 오물이 감각을 막아 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덕스럽게 내리치던 비가 그치고 나의 삶도 언젠가 막아 서는 것도 없이 그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도 이름을 가져보지 못한 들판은 바람의 리듬에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언제가 그칠 것을 아는 듯, 들판은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나의 걸음이 재법 묵직하게 다가 갔는데도 그 낯설은 개입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도시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 들판에서 삽시간에 변하는 빛처럼 그런 희망을 품어 봅니다. 다음에도 구름이 들판을 그늘에 묻어 버리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기를, 다음에도 처음 온 것처럼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랍니다.







2006/08/29 00:44 2006/08/2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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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이스빌리 2006/08/30 09:0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1번 사진 아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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