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다녀오면 한껏 고양된 낭만적인 감수성에 기대길 일쑤이긴 하다. 이국적이고 한가로운 풍경에 다른 감수성은 철저히 배제되기 마련이다. 3번째 방문이었던 제주도 길 중에 풍광이라면 516 도로를 빼놓을 수 없다. 방문자들이 무심코 516도로, 오일육도로라고 부르는 길은 한때 제1 횡단도로 였다. 군사 쿠데타의 주역들이 만들고 붙인 역겨운 이름의 길에 그 풍광이란... 아이러니이다. 북인이라 불리는 육지사람들의 여행 인상기에 꼭 등장하는 516 도로의 아름다운 풍경은 대체로 낭만적인 감수성만으로 제주도를 빗대게 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방 전후사를 통해 제주도의 지형적 위치 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가 폐쇄적으로 육지와 결절되어 있는 부분은 4.3 민중항쟁을 통해 잘 들어난다.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약 7년 7개월 동안 남한만의 독립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어난 시위를 유혈 진압으로 무력화시키려는 미군정과 우익단체들의 탄압과 테러를 통해 3만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를 모르지 않았지만, 이러한 지적 호기심은 제주도의 이국적인 낭만에 번번이 거세되곤 했다. 이번 방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은 여전히 짧은 생각과 여행에 대한 흥분만을 고양할 뿐 진지한 태도로 그 고장을 둘러볼 겸허한 자세를 가지지 못한 나의 가벼움 때문이다. 민중의 피와 소리가 묻힌 땅을 밟으며 고양된 말초 신경만으로 자본주의의 향락이 덮힌 항구를 히히덕 거리며 들락 거린 철없음에 고개가 무거워진다.
몸조차 이미 역사라고 푸코가 말했다, 하지만 앎과 호기심이 짧다고 하여 그곳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진실에서 소외 되는 여행을 거듭 되풀이 하는데 감수성을 쏟아내지나 않을지 염려스럽다. 그래서 지금 이 반성이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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