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을 분해하길 원하는 눈은 내용의 눈이다. 내용의 눈은 감칠맛 나는 감각은 없지만, 숭고한 이해를 도모한다. 그런 눈은 남들이 웃는 코미디에서 눈물을 발견하고, 연애에 도움이 되는 미술관에서 자랑삼을 지식을 말할 줄 안다. 또, 단어 하나에 숨이 넘어가는 프로젝트에서 신선한 논리를 건설하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걸어 넘어지게 하는 궁극의 그것으로써의 문서는, 내용이 지켜지던 예술사조의 한 자락과 같아서 눈으로 만들어지고, 눈으로 평가된다. 다만, 모두가 내용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가 있다. 또, 문제가 있다. 내용은 형식의 틀 안에서 라는 진부한 섭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용의 눈에 대립항은 형식의 눈이다. 형식의 눈은 감칠맛 나는 감각을 지니며, 아름다움의 눈이라 불릴 수 있다. 형식의 눈은 저급하다 치부되는 hitting comedy 를 보고 웃을 수 있고, 마치 문외한인양 '알 수 없는 느낌' 을 음미한다. 형식의 눈은 형식주의의 수학과 다르다. 형식의 눈은 Form, 형식주의는 Formula, 그 각각의 의지가 다르다.


단어 하나에 숨 넘어가는 프로젝트에서 인식과 통찰에 관한 회의가 있었다. 어떤 조건에서 '인식'을, 어떤 조건에서 '통찰' 이란 단어를 쓰겠냐는 회의다. 지식인에 물어보는 것은 공유도 토론도 아니다. 인식의 전제는 '보는 것', 그리고 '그대로 아는 것' 이라 토론하고 통찰의 전제는 역시 '보는 것', 그리고 '다르게 아는 것' 이라 토론했다. 둘 다 보는 것에 대한 조건 성립은 결과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컨설팅이 일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할 얘기가 많지만, 중략하고 '그대로 아는 것' 이 인식이다. 그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란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학습해서 아는 것, 학습한 것마저 잊고 아주 몸에 밴 것, 설명되어서 알게 된 것으로 분류된다. 인식한다는 것은 보고, 알기 위해 이미 알았던 것을 동원, 대입하는 것으로 내용의 눈이다. 속도가 문제이긴 하지만, 인식이란 단어와 더불어 per second 은 쓰지 않으니 인식은 거기까지, 세 분류로 설명할 수 있는 문장 뒤에 쓴다. '다르게 아는 것' 은 감수성과 조합에서 나온다. 감수성에 대해서 직관의 능력을 토로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역시 중략하고, 대상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 통찰이다. 통찰이라 하여 완전한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도 객관성은 없다. 그처럼 보이기 위한 형식이 있다. 그것을 조합이라 한다. 다름을 꽤뚫기 위한 장치는 여러 인지들의 조합이다. 형식에 대한 완전한 발견 또한 없다. 따라서 직관하기 위한 장치가 감수성이다. 감수성은 형식을 재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여러 인지들과 조합하여 객관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통찰이다. 인지보다 속도에 덜 구애 받는다. 그래서 당장은 알지 못하는 느낌으로 전달되는 형식의 눈이다. 당장은 알지 못하는 느낌이지만, 객관처럼 보이는 문장 뒤에 쓴다.


내용을 이해, 형식을 감각으로 규정한다면 반대되는 눈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사전하고 다르니까... 논리의 비약일 수도 있다. 예술과 일의 공통된 천박함은 무지가 아니라 무력에서 나온다. 사전으로 알지 못하고, 사전을 살피지 않아 무지로움이 아니라, 자신으로 부터 시작된 논리가 설득이 된다. 모두가 정확하게 아는 지식은 별로 없다. 통찰력 있는 논리가 설득되고, 설명되어서 알게된 인지가 된다.
2005/10/24 21:20 2005/10/24 21:20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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