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고픈 사람들을 위한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의 평가가 식상하여 '간접체험에 의한 기준' 과 세상의 중심이 오스트레일리아는 아니지, 라는 시니컬에 입각하여 감상하지 않았다. 감각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어떻게 외쳤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세상의 중심이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는 생각은 지리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세상의 실체를 지구로 한정지었을 때, 지구의 중심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울룰루(에어즈락) 라는 거대한 암석이 있는 지대라고 한다.
공간적인 배경을 배제한 '세상' 이라는 단어는 매우 관념적이다. 관념적 분석에 따르면 세상은 '나' 와 '주변' 이 차별되고, 나를 이루는 '세계'와 주변을 이루는 '우주'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 와 '세계' 는 끊임없는 '부정 不定' 이 존재하고 '주변' 과 '우주' 는 신화적 '믿음' 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를테면, 나를 세계와 관계 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서 '필연' 이라는 정체성을 생성하고자 하는데 반해 주변과 우주의 관계는 '우연' 의 연속성에 지배 받는다. 따라서 나를 인정하는 정체성은 필연의 속성에 의해서 그 본질의 표상을 얻을 수 없고, 주변의 우주는 우연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지나가는 것' 에도 믿음을 부여하여 그 존재를 인지하려 한다.
간단한 진리론의 사각형에 의한다면 우연과 믿음은 존재를 인지하는 것임으로 본질적이지 않고, 필연과 부정은 현상적인 정체를 얻으려는 것임으로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상의 중심에서의 외침은 나와 세계의 중심에서의 외침인지, 주변과 우주의 중심에서의 외침인지 구별되고,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관념이 현상적이고 본질적인 발현인지, 믿음으로 그 존재을 사유하는 것 인지, 밝혀진다고 볼 수 있다.
주변 우주의 우연성은 현대인의 생활양식과 일치하고 다양성의 촉발로 인한 세계로 부터의 정체성 부재 또한 동시대인이 겪는 정신적 질환과 다르지 않다. 현대인이 지닌 생활양식은 우연적인 우주에 맞춰서 발전되고 있다. 말하자면, '지나침', '지나가다' 라는 우연적인 키워드가 우주를 이루는 네트워크 즉,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도구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익히 짐작하다시피 가장 극명한 예가 인터넷이다. 우연성의 네트워크인 인터넷은 지나침 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낸 생활양식이다. 인터넷 속에서의 '나' 는 모든 텍스트를 우연적인 상징체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떤 노드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다' 도착한 노드들의 클러스트링인 것이다.
이러한 가상현실의 양식은 현실적인 주변 우주에서도 척박한 땅을 이러저리 헤매이는 노마딕 Nomadic 적인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된다. 한편 그런 관점은 우주성 자체는 우연적이지 않고, '나' 라는 에고의 우연성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하지만, 주변 우주의 클러스트링은 우연적(인지하지 못했던) 노드들로 둘러 쌓여 있고 '나'는 '지나가다' 라는 키워드로 노드(다른 에고)와 텍스트(지식, 감정, 정보 등)를 상징체계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주자체가 우연성을 지니게 된다. 우연적 우주, 척박한 땅, 가치와 전통에 통제되지 않는 노마디즘 Nomadism 의 '나' 가 실은 자유로운 에고의 가치를 지니고 변화에 능동적 가치부여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인의 동적, 심리적 자유는 필연적 정체성의 가치로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라는 필연적 키워드를 창조하기 어렵다.
노마디즘 Nomadism 의 '나'를 그저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여행쯤으로 완성 시킬 수 있는 것처럼 간주함으로써 에고의 에고다움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게다가, 디바이스 device 만 주어 진다면 어디를 유랑해도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정체(停滯)된 정체(正體)를 추구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적 양식은 치고 빠지기식 삶을 능란하게 만든다.
따라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는 자기 부정을 통한 정체성과 필연성이 없는 에고들의 감각적 상징체계일 뿐이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여 '나' 의 정체적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노마디즘의 의지가 없는 여행자들이 공간적 여행지에 대한 동경을 외친 것 뿐이다.
세상의 중심이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는 생각은 지리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세상의 실체를 지구로 한정지었을 때, 지구의 중심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울룰루(에어즈락) 라는 거대한 암석이 있는 지대라고 한다.
공간적인 배경을 배제한 '세상' 이라는 단어는 매우 관념적이다. 관념적 분석에 따르면 세상은 '나' 와 '주변' 이 차별되고, 나를 이루는 '세계'와 주변을 이루는 '우주'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 와 '세계' 는 끊임없는 '부정 不定' 이 존재하고 '주변' 과 '우주' 는 신화적 '믿음' 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를테면, 나를 세계와 관계 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서 '필연' 이라는 정체성을 생성하고자 하는데 반해 주변과 우주의 관계는 '우연' 의 연속성에 지배 받는다. 따라서 나를 인정하는 정체성은 필연의 속성에 의해서 그 본질의 표상을 얻을 수 없고, 주변의 우주는 우연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지나가는 것' 에도 믿음을 부여하여 그 존재를 인지하려 한다.
간단한 진리론의 사각형에 의한다면 우연과 믿음은 존재를 인지하는 것임으로 본질적이지 않고, 필연과 부정은 현상적인 정체를 얻으려는 것임으로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상의 중심에서의 외침은 나와 세계의 중심에서의 외침인지, 주변과 우주의 중심에서의 외침인지 구별되고,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관념이 현상적이고 본질적인 발현인지, 믿음으로 그 존재을 사유하는 것 인지, 밝혀진다고 볼 수 있다.
주변 우주의 우연성은 현대인의 생활양식과 일치하고 다양성의 촉발로 인한 세계로 부터의 정체성 부재 또한 동시대인이 겪는 정신적 질환과 다르지 않다. 현대인이 지닌 생활양식은 우연적인 우주에 맞춰서 발전되고 있다. 말하자면, '지나침', '지나가다' 라는 우연적인 키워드가 우주를 이루는 네트워크 즉,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도구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익히 짐작하다시피 가장 극명한 예가 인터넷이다. 우연성의 네트워크인 인터넷은 지나침 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낸 생활양식이다. 인터넷 속에서의 '나' 는 모든 텍스트를 우연적인 상징체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떤 노드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다' 도착한 노드들의 클러스트링인 것이다.
이러한 가상현실의 양식은 현실적인 주변 우주에서도 척박한 땅을 이러저리 헤매이는 노마딕 Nomadic 적인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된다. 한편 그런 관점은 우주성 자체는 우연적이지 않고, '나' 라는 에고의 우연성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하지만, 주변 우주의 클러스트링은 우연적(인지하지 못했던) 노드들로 둘러 쌓여 있고 '나'는 '지나가다' 라는 키워드로 노드(다른 에고)와 텍스트(지식, 감정, 정보 등)를 상징체계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주자체가 우연성을 지니게 된다. 우연적 우주, 척박한 땅, 가치와 전통에 통제되지 않는 노마디즘 Nomadism 의 '나' 가 실은 자유로운 에고의 가치를 지니고 변화에 능동적 가치부여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인의 동적, 심리적 자유는 필연적 정체성의 가치로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라는 필연적 키워드를 창조하기 어렵다.
노마디즘 Nomadism 의 '나'를 그저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여행쯤으로 완성 시킬 수 있는 것처럼 간주함으로써 에고의 에고다움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게다가, 디바이스 device 만 주어 진다면 어디를 유랑해도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정체(停滯)된 정체(正體)를 추구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적 양식은 치고 빠지기식 삶을 능란하게 만든다.
따라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는 자기 부정을 통한 정체성과 필연성이 없는 에고들의 감각적 상징체계일 뿐이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여 '나' 의 정체적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노마디즘의 의지가 없는 여행자들이 공간적 여행지에 대한 동경을 외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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